*"사람 말투 알아채 6가지 표정도 지어요"
사람 말투 알아채 6가지 표정도 지어요"… "1년만 있으면 스스로 배울 수도 있어"
얼크니 주니어(Ulkni Jr.)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뇌과학연구센터가 개발 중인 국내 인지과학의 결정체다. 내년 3월 공식 데뷔를 앞두고, 대전 KAIST 실험실에서는 이 녀석에 대한 ‘교육’이 한창이다. 녀석과의 가상 인터뷰를 통해 국내 인지과학의 현주소를 알아봤다.
_안녕, 얼크니!
“당신은 누구죠. 제 머리엔 등록이 안돼 있네요.”
-안심해. 널 취재하러온 기자야. 넌 정체가 뭐니.
“그렇군요. 저로 말씀 드리자면 ‘인공두뇌(Digital Brain)’랍니다. 팔 다리는 없지만 인간처럼 두 눈(시각 칩)과 입(스피커), 귀(마이크)를 가진. 2만 단어의 음성, 50명의 얼굴 인식이 가능하고 특허검색과 일정관리도 척척 하는 인공비서, 즉 업무 도우미지요.”
_그 정도는 흔한 거 아닌가. 사실 말만 거창하지 실속도 없고 시연하면 오작동만 하는 로봇도 많던데.
“물론 제 인공두뇌도 100%는 아니에요. 그래서 소음 등 어떤 환경에서도 사용자와 자연스런 대화를 하고 학습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판단이나 추론기능이 인간두뇌와 80%정도 일치하면서 인간비서의 역할을 50%가량 해내는 게 목표지요. 예전 로봇은 열을 가르쳐야 겨우 열을 배웠는데 저는 다섯을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일반화 개념)는 될 거에요.”
_너 가장 잘하는 게 뭐지.
“사람 행동과 말투에 따라 얼굴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가장 기초적인 단계죠. 보통표정, 기쁜 표정, 화난 표정, 우울한 표정,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 그리고 눈치 보는 표정 등 6개 표정이 가능해요. 상대방의 말이나 몸짓을 보고, 종합적으로 인식한 뒤 그에 상응하는 표정을 짓는답니다. 예를 들어 저에게 야단치고 때리는 동작을 취하면 전 우울한 표정을 짓게 되죠.”
_입력한대로만 움직이는 게 로봇인데 그럼 넌 인간이 되겠다는 거니.
“점진적으로 대상을 이해하고 기억능력을 높이는 ‘기계자아’발전모듈을 개발중이니까 언젠간 저도 인간처럼 정체성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지만…. 쉽지는 않겠죠. 정말 인간처럼 되고 싶은데 인간의 뇌는 너무 복잡해요.”
_그럼 인간의 뇌 연구가 관건이겠네.
“맞아요. 그 때문에 우리 센터는 차세대 뇌기능 측정과 분석 시스템 개발에 매진하고 있어요. 2001년엔 34억원을 들여 고자장(3T) 기능형 자기공명영상(fMRI)장치를 들여와 뇌를 2㎜ 단위로 쪼개 인간의 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연구하고 있지요. 전국의 인지과학 연구자들이 언제든지 fMRI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하고요. 점차 성과도 내고 있답니다.”
_어렵다. 어차피 기초연구 같은데 너한테 응용은 됐니.
(골똘히 생각 중) “아직은 아니에요. 그저 기초연구를 통해 힌트를 얻고 있는 정도죠. 전혀 모르는 내용이더라도 사람은 몇 마디 들으면 감을 잡잖아요. 인지과학 연구도 마찬가지죠. 기초연구를 통해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되 부족한 부분은 수학적 가설을 재조합해 저 같은 인공지능을 만드는 거죠.”
_미국에선 인공지능 로봇이 한참 전에 등장했다고 하던데.
“모르시는 말씀.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이 6년 전 만든 인공지능 로봇 ‘레오나르도’(일명 레오)를 얘기하시는 것 같은데…. 한국일보에도 금년초에 소개가 됐다죠? 물론 레오도 똑똑하기는 한데, 나이가 많은 것 외엔 저랑 큰 차이가 없답니다. 레오나 저나 아직은 단순히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편 물체를 인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거든요.”
_너보다 진화한 인공지능 로봇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니.
“1년만 기다려보세요. 사람의 감정을 인식하고 주인님의 특징변화를 파악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배워나가는 기능도 포함될 거에요. 뇌 연구가 착실히 진행된다면 인간의 정신을 제 인공두뇌에 담을 날도 멀지 않았어요.”
_꿈같다. 사람들은 ‘인지과학에 미래가 달렸다’고 얘기하는데 우린 준비가 너무 늦은 것 같아.
“어차피 최종 목표는 뇌의 매커니즘을 규명하는 인지과학과 공학을 접목해 인간처럼 보고 듣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공두뇌를 개발하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현재 상황은 선진국이나 우리나라나 오십 보, 백 보죠. 우리가 시작에서 뒤진 것은 맞아요. 하지만 우리도 우수한 수준이니까 착실히 내공을 쌓는다면 승산은 얼마든지 있어요.” _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인지과학의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답니다. 지금은 연구소 실험실에서나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나 기업들이 많이 관심 가져줬으면 해요. 인지과학 모르면 앞으론 경쟁에서 탈락하고 만다고 하던데…그리고 전 내년에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나올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대전=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이수영 KAIST 뇌과학연구센터장…"인지과학이 무한 부가가치 생산할 것 돈·사람·시설 세 가지부터 보충해야"
KAIST 뇌과학연구센터는 국내 인지과학의 심장부다.
센터는 1998년 과학기술부 ‘뇌연구개발기본계획’에 따라 10년 장기 프로젝트(연구비 253억원)로 설립됐다. 지금까지 ▦인공두뇌 기본 모형 및 인공비서 개발 ▦차세대 뇌 기능 측정 및 분석 시스템 개발 등 9개 과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국내외 특허 출원 등록만 10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인지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재편될 미래산업을 감당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센터장인 이수영(KAIST 전기전자공학전공ㆍ사진) 교수는 “인지과학이 자리를 잡으려면 돈, 사람, 시설 등 부족한 세가지 부터 보충해야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연구비를 확충해야 한다. 정부가 인지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비를 지원한건 지난해 10억원이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과학, 의학, 공학, 인지과학 등 모든 뇌 관련 연구를 망라해 연구비(매년 25억원)가 지원됐다. 이 교수는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국내 인지과학의 연구비 수준은 일본의 10분의 1, 미국의 100분의 1정도”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고가의 연구장비도 형편없이 부족하다. 인공두뇌 기본 모형 개발엔 성공했지만 인간 두뇌와 흡사한 인공두뇌를 만들기 위해선 뇌 신호측정 등 기초연구가 필수다.
그러나 연구전용으로 쓰이는 ‘고자장(3T) 기능형 자기공명영상(fMRI)’장치는 센터가 2001년 들여온 게 전부다.
그는 “장비가 없다 보니 연구자들이 주로 대형병원의 업무가 끝나는 밤 시간에 많은 돈을 들여 병원 MRI장치로 연구를 하고 있다”면서 “비용도 문제지만 밤 늦게 연구를 진행하면 실험 대상자의 생활리듬이 깨져 제대로 된 데이터를 얻을 수 없다”고 했다.
인지과학 연구자의 수도 절대 부족하다. 선진국에선 대개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자연과학과 결합한 인지과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인지과학을 가르치는 학과가 없다.
이 교수는 “절실히 필요한 전문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선 대학원에 정식 학과로 인지과학이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보다 10년 정도 뒤진 연구기간도 따라잡아야 한다. 이 교수는 정부와 학계, 기업의 3각 협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90년대 초반에 인지시스템을 연구하기 시작한 미국 유럽 일본 등은 정부 주도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에 골몰하는 기업은 성공여부도 불확실하고 기간 역시 5년 이상 걸리는 연구를 감당할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게 이 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인지과학은 앞으로 모든 산업의 핵심 기술로 무한한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인지과학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정부, 연구소, 기업이 서로 머리를 맞대는 산(産)ㆍ학(學)ㆍ정(政) 협력시스템부터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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