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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의 미디어 비평] ‘평균’도 안되는 기자 월급 합리적 공론 제시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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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준의 미디어 비평] ‘평균’도 안되는 기자 월급 합리적 공론 제시 가능할까

입력
2007.03.1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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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기자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60년대 후반 서울의 규모 있는 언론사에 입사한 한 분은 첫 월급이 하숙비내기에 빠듯한 정도였다고 한다.

50년대 후반에 입사한 다른 분은 견습시절, 월급날이 됐는데 월급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총무국에 따졌더니, 총무국장이 “증(證) 주지 않았냐?”고 되묻더라며 기가 찰 노릇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여기서 증(證)은 기자신분증을 지칭하는 것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언론인의 급여는 1980년대 5공화국이후 상당부분 현실화돼 1997년 IMF 경제위기전까지는 다른 업종의 평균 급여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경제위기를 겪고 나서는 임금의 실질 구매력이 늘어지지 않아 전체적으로 횡보 또는 하락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요즘 언론사 임금의 또 다른 특징은 회사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다. 신문 쪽은 불황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스포츠 신문은 더 어렵다. 방송은 신문보다 사정이 나은 편이다. 지역에 기반하고 있는 언론사는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월평균 급여가 200만원이 넘는 곳을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지역언론사는 차마 글로 옮기기 부끄러울 정도다. 그마저도 다달이 받지 못하는 곳도 많다.

경영상태가 안 좋은 언론사의 기자는 언론인으로, 생활인으로서, 집안의 가장으로서 기(氣)를 살리기는커녕 “말이 안 되는” 상태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맞벌이를 택하거나 부업, 광고 리베이트 등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다.

적정한 기자 월급이 어느 정도인가는 논란이 될 수 있다. 참고로 미국 기자들의 평균 급여는 연봉 4만3,000천 달러 정도다(인디애나대학 데이비드 위버 교수 연구, 2002년 조사). 일본도 미국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필자의 생각에 언론인은 최소한 그 사회 평균정도의 소득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에는 월급이 100만원이 안되는 언론사가 있다. 지역언론사뿐 아니라, 서울의 전국단위 언론사에도 있다. 이름을 들어본 회사도 포함돼 있다. 100만원이면 미혼이라고 하더라도 제대로 생활을 하기 어렵다.

살인적인 저임금이다. 지난해 가구별 월평균생계비(한국노총)는 1인가구가 150만원, 4인가구는 422만원이다. 월급 100만원은 노동부가 정한 최저 생계비 120만(4인가족기준)보다 밑이다. 언론인도 생활인이기에 노동에 상응하는 정당한 급여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집에 돌아가면 부인이나 남편, 아이들이 있다.

점심값과 교통비를 걱정해서는 제대로 취재하기 어렵다. 아이들 학비를 걱정해서는 세상이 정확하게 보이지 않는다. 기자들이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다면, 이것은 사회적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피해는 장기적으로 우리사회가 고스란히 부담할 것이다. 합리적인 공론의 형성은 기대하기도 요구하기도 어렵다. 100만원의 월급을 주는 언론사 사주는 각성해야 한다. 그것 받고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줄서 있다고 한다면, 노동착취를 되풀이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언론은 공공성과 상업성의 조화속에서 움직인다. 공익적 가치를 강조하다 보면 자칫 이상에 빠져 공허해질 수 있으며, 상업적 이익에 치중해 현실논리만을 좇다 보면 천박해질 수 있다.

양자는 대치적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다. 공공성을 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업적 이익이 보장되지 못하면, 그것은 허구다. 이런 논리는 기자 개인에게도 곧바로 적용된다. 기자들이 최소한의 품격을 갖출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공공적 사명이라는 말은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

올해도 각 언론사는 임금협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 것이다. 언론사는 ‘사람장사’라고 한다. 좋은 인재가 있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뜻이다. 언론인을 잘 대우하고 그들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 그래서 언론인들이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좋은 언론의 핵심이다.

대다수 언론인들이 힘든 상황에서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지만, 힘든 상황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과 발전을 말하는 것은 자칫 공허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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