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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두 가지 항복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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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길 위의 이야기] 두 가지 항복의 풍경

입력
2007.03.1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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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1945년 8월, 일왕이 발표한 대동아전쟁종결칙서라는 것을 읽게 되었다. 옥음(玉音)방송, 즉 천자의 목소리란 이름으로 방송된 라디오 연설은,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황을 고려하여 비상조치를 취함으로인해 시국을 수습하고자 한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칙서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어디에도 항복이라거나 속죄라는 단어는 들어 있지 않다(아, 아니다. 딱 한 번 속죄라는 말이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황실 신령들에 대한 속죄이다). 일왕은 그저 포츠담선언을 수락한다, 라는 표현으로 종결과 항복의 뜻을 대신한다.

그에 반해 우리의 삼전도비에 새겨진 문구들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비굴한 문장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황제가 동방을 정벌하시니 위세가 찬란하구나, 로 시작된 문장은, 황제의 밝은 가르침, 마치 자다가 깨어난 듯, 우리 임금이 공손히 복종하여 신민을 이끌고 귀순하도다, 에서 그 절정을 맞는다.

같은 항복이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자세는 각각 달랐다. 그리고 그 다른 자세들은, 후대에서 한쪽은 발뼘으로, 또다른 한쪽은 페인트 세례로 이어졌다. 정치인들이 모호하고 애매한 말을 선호하는 까닭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소설가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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