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건교委 등 노른자위에 기업측서 거액 몰려지자체장·지방의원에게도 받아 공천 대가 의혹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13일 공개한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회의 고액기부자 현황을 보면 상임위별로 직무 연관성이 의심되는 보험성 후원금이 적지 않다. 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의 후원금도 다수 확인돼 5ㆍ31지방선거 공천과정에 대한 의혹을 낳고 있다.
선관위가 이날 공개한 ‘2006년도 정당ㆍ국회의원 후원회의 수입ㆍ지출 내역’에 따르면 재경위와 건교위 등 이른바 노른자위 상임위 소속 의원의 경우 직무와 직ㆍ간접적으로 관련된 사람들로부터 후원금을 받은 사례가 상당수였다.
재경위의 경우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이 우리은행 부행장으로부터 220만원 등 기업체 임원 10명에게서 고액의 후원금을 받았다. 열린우리당에선 이목희 의원이 현대하이스코와 대한생명 임원에게서 각각 200만원을, 삼성 킬러로 통하는 박영선 의원이 제일모직 사장으로부터 300만원을 후원받았다.
또 통합신당모임의 강봉균 의원은 한화 상무 290만원 등 모두 11명의 기업체 임원으로부터 5,000여만원을 모금했다.
건교위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나라당 이진구 의원과 정희수 의원은 각각 계룡건설과 대한항공 임원에게서 거액을 후원받았고, 우리당 정장선, 강길부 의원 등의 고액기부자 명단에도 건설사 임원이 포함됐다.
정무위에선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이 구자준 LIG손해보험 사장(200만원) 등으로부터, 우리당 소속의 박병석 정무위원장은 윤승모 MT트레이딩 사장(500만원) 등으로부터 각각 고액을 받았다.
이와 함께 박진, 권영세, 공성진, 유기준, 이해봉, 고조흥, 이인기 의원 등 상당수 한나라당 의원의 고액기부자 명단에는 해당 지역구의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이 고액기부자로 올라 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지난해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공개기부자 가운데 절반 가량은 직업란에 회사원 또는 기업인 정도로 간단하게 표기해 직무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직업이 구체적으로 표시되면 직무 연관성이 드러나는 의원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은 신상 공개 요건을 강화하라는 비판여론에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한편 이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국회의원 후원회 모금총액은 452억370만원으로, 2005년(352억1,630만원)에 비해 28.4% 증가했다.
후원회당 평균 모금액은 1억5,017만원으로 전년 대비 26% 가량 늘었다. 이는 전국 선거가 있는 해에는 평년의 배까지 모금할 수 있는 규정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각 정당의 수입총액은 1,881억원이고 이 중에선 당비(595억여원)의 비중이 31.7%로 가장 높았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각 당, 어디다 돈 썼나
선거 관련 지출엔 펑펑, 정책 개발엔 5%만
각 정당이 지난해에 정책개발비로 사용한 액수는 정치자금 지출 총액의 5.0%에 그쳤다. 5ㆍ31 지방선거를 위한 선거비용을 감안하더라도 ‘정책 정당’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지난해 각 정당이 사용한 정치자금 총액은 1,526억원으로 2005년(620억원)보다 무려 906억원이나 늘었지만 정책개발비는 76억원으로 오히려 전년도(86억원)보다 줄었다. 당연히 전체 지출에서 정책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율도 13.3%에서 5.0%로 대폭 감소했다.
정당별로는 열린우리당의 정책개발비 비중이 2005년 15.1%에서 지난해엔 4.0%로 크게 줄었고, 한나라당도 같은 기간에 20.6%에서 7.1%로 떨어졌다. 여성정책개발 등과 관련된 여성정치발전비도 2005년 4.7%(29억원)에서 2.2%(33억원)로 급감했다.
반면 선거 관련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선거비용 164억원을 제외하더라도 후보 선출 및 후보자 지원금 명목의 조직활동비는 2005년 169억원에서 592억원으로 급증했다. 인건비를 포함한 기본경비도 283억원에서 473억원으로 늘었다.
이 같은 사실은 각 정당이 선거를 치르는 데 있어 여전히 정책 경쟁보다는 조직 동원에 치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당들이 사용한 정책개발비는 전국 선거가 없었던 2003년에는 8.8%였지만, 17대 총선이 치러진 2004년에는 5.3%로 떨어졌다.
정치권은 비판 여론을 감안해 정책개발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경쟁적으로 밝혔고, 이 결과 2005년에는 정책개발비가 13%를 넘어서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갔지만 지난해 5ㆍ31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이 같은 대국민 약속은 또다시 공염불이 되고 말았다.
양정대 기자 torch@hk.co.kr
■이색 기부자들
국회의원에게 후원금을 준 사람들 가운데는 유명인사도 많았다. 대선 잠룡으로 꼽히는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20년지기인 민주당 김종인 의원에게 200만원을 후원했다.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동생 지만씨는 누나에게 500만원을 기탁했다.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대표와 정몽혁 전 현대정유 사장은 현대차 사장을 지낸 민생정치준비모임 이계안 의원에게 500만원씩 줬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최근 남의 이름을 빌려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약식기소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우리당 김교흥 김우남 윤원호 의원에게 500만원씩을, 같은 당 김명자 의원에게 300만원을 각각 기부했다.
문화계에서는 영화제작자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가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에게 500만원, 연극배우 김갑수씨가 민생정치준비모임 정성호 의원에게 500만원을 기부했다. 도서출판 학운재 우찬규 대표는 김현미 우상호 노웅래 우제창 의원 등 우리당 정치인에게 월 20만원씩 1년 간 후원금을 줬다.
도박을 소재로 한 드라마 <올인> 의 실제 주인공 차민수씨가 이해찬 전 총리에게 각각 200만원을 기부한 사실도 공개됐다. 올인>
우리당 선병렬 의원과 임종석 의원은 본인에게 기부했다. 선 의원은 360만원을 자신의 후원회에 넘겼고, 임 의원은 지난해 당대표 경선에서 쓰다 남은 288만원을 자신의 후원계좌에 넣었다. 의원에게 돈을 준 의원도 있었다. 이정일 전 민주당 의원은 김효석 원내대표 등 같은 당 의원 4명에게 모두 1,300만원을 기부했다.
한나라당 권오을 의원은 같은 당 전재희 의원에게 300만원, 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같은 당 강창일 의원에게 300만원을 후원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정당별 모금 분석
지난해 한나라당 의원들의 후원금 증가율이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민심이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을 등진 탓이 크다.
지난해 의원들이 모금한 후원금 총액은 최대 의석을 보유했던 우리당(210억원)이 한나라당(204억원)을 조금 앞섰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각각 20.2%, 40.1%로 한나라당 증가율이 훨씬 더 컸다.
양당 대선주자들의 후원금 격차도 컸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해 3억1,602만원을 거둬들여 대선주자 중 수위를 기록했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2억7,962만원)과 고진화 의원(2억3,910만원)도 상위권에 올랐다.
이에 비해 우리당 대선주자인 김근태 전 의장(1억6,836만원) 천정배 의원(1억6,530만원) 한명숙 전 총리(5,996만원) 김혁규 의원(4,933만원) 등은 모금액이 2억원을 넘지 못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은 현역 의원이 아니다. 후원금 모금액 상위 20인에 포함된 한나라당 의원은 주호영 의원 등 13명이었고 우리당 의원은 이계안 의원 등 6명이었다.
개인 소액 후원자들이 크게 늘어난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정치자금 기부는 38만8,282건, 총 452억원으로 건당 평균 기부액은 11만6,000원이었다. 2005년 건당 평균 기부액 12만4,000원(총 28만2,867건ㆍ352억원)에 비해 건수는 증가했으나 건당 금액은 줄었다.
개미군단의 힘은 민노당 소속 의원들의 후원금 약진에서도 나타났다. 권영길 의원은 3억380만원을 걷었으며 강기갑 의원 등 비례대표 의원 7명도 비례대표 의원의 후원금 한도액(1억5,000만원)을 넘겼다. 노조 등의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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