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부터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열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고위급 회담은 시시각각 국익의 ‘마지노선’을 정해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이익에 안 맞으면 한미FTA를 안 할 수도 있다. 경제 외적인 것은 생각할 필요 없다”고 한 노무현 대통령의 13일 발언은 우리측 고위급 대표들에게 부담없이 공세적으로 회담에 임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종훈 한국측 수석대표는 8차 본협상이 끝난 12일 밤 기자들에게 “협정 전체에서 ‘이익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말로 고위급 회담에 임하는 기본 방침을 설명했다.
김 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측 수석대표는 일단 다음주 초(19~21일) 워싱턴에서 만나 자동차, 무역구제, 의약품, 개성공단 등의 분야에서 일괄 절충안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양국은 이 회담에서 쟁점 타결에 실패할 경우 다시 회담 일정을 잡아 재조정에 나설 계획인데, 사안에 따라 장ㆍ차관급 이상의 회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별도의 고위급(차관보) 회담이 예정된 농업ㆍ섬유 분과가 다른 핵심 분야와 어떻게 연계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인 상태다.
수석대표 협상 테이블에 올리지 않고 별도의 회담을 연다는 점은 그만큼 양측 모두 두가지 사안을 다른 사안과 직접 연계해 처리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감한 쟁점들은 장ㆍ차관급, 나아가 대통령의 결단도 불가피하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리측 협상단 관계자는 “누구라도 자기 선에서 책임지고 양보의 폭을 결정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시점이 됐다”며 “쟁점별로 ‘마지노선’을 정하는 것은 최소 장관급 이상의 지시나 비공식적 공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미FTA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높은 수준, 낮은 수준, 중간 수준 모두 따져 국가적 실익, 국민 실익 중심으로 가면 된다”는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원칙적인 언급이긴 하지만 농산물 등 수세에 몰린 분야에서 우리측 협상단에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미국측을 압박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노 대통령이 만약 “한미FTA는 성사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면, ‘딜 브레이커’(협상결렬요인)로 꼽히는 농업 분야 협상팀은 양보 수준을 놓고 엄청난 압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협상 시한에 대한 고민도 제기되고 있다. 만약 타결 목표 시점인 이달 30일에 임박해서까지 민감 사안에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할 경우 양국은 ‘협상 결렬’‘협상 장기화’ 중 한가지를 택해야 한다.
미 행정부가 의회의 위임을 받아 행사해온 신속협상권(TPA) 기한 만료로 인해 30일을 넘기면 미국내 협상주체는 행정부에서 의회로 바뀌게 되고, 그렇게 되면 협상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 의회는 행정부보다 훨씬 자국 이익을 지키는데 강경한 입장이어서 우리측이 미 의회를 상대로 한 협상에서 ‘이익의 균형’을 끌어내기란 매우 어렵다. 때문에 30일을 넘기면 한미FTA는 물건너 갈 공산이 크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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