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들은 가끔 스크린을 통해 불가능한 것을 꿈 꾼다. 윌리엄 와일러는 <벤허> 의 전차 경주 장면을 촬영한 후, “오! 신이여 정말 내가 이것을 만들었단 말입니까”라고 외쳤다고 한다. 벤허>
그 기분은 <타이타닉> 으로 아카데미작품상을 탄 후 “나는 세상의 왕이다”를 외친 제임스 카메론의 환호에도 여실히 드러나는 속내이기도 하다. 윌리엄 와일러나 제임스 카메론의 야심이 ‘스펙터클’ 즉 거대한 시각의 재현에 있다면, 영화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다른 감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면 냄새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같은. 타이타닉>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원작 <향수> 는 지난 20여년 동안 꿈의 프로젝트,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여겨졌었다. 향수>
그도 그럴 것이 원작자가 완강히 영화화를 반대한 데다, “그 곳에는 사람 냄새와 짐승 냄새, 음식 냄새와 질병 냄새, 물과 돌 냄새, 재와 가죽 냄새, 비누 냄새, 갓 구워 낸 빵 냄새, 초에 넣고 끓인 계란 냄새, 국수 냄새,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은 놋그릇 냄새, 샐비어와 맥주와 눈물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마르거나 젖은 지푸라기 냄새 등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같은 문장을 어떻게 시각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향수> 는 냄새에 관한 소설이자, 냄새의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한 천재의 후각적 방랑을 따라가는 일종의 비틀린 영웅설화이기도 하다. 세상에 워낙 많은 종류의 천재들이 있지만, 냄새의 천재라는 설정 자체가 기괴하고, 소설은 책 갈피갈피마다 수억개의 후각 세포가 뒤엉켜있는 것 같은 경탄할 만한 생생한 후각적 묘사로 뒤덮여 있다. 향수>
그간 음식을 통해 인간의 미각을 ‘성과 죽음’이라는 양면거울에 담아낸 영화들은 있었지만, 아마 이렇게 상대를 유혹하고 달뜨게 하는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후각의 기능이 전면화 되기는 문학에서도 처음일 것이다.
<롤라 런> 으로 독일영화판에서 가장 기교가 승한 감독으로 정평 나 있는 톰 튀크베어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주인공 그루누이의 후각적 예민함을 시각화한다. 바로 ‘코’를 클로즈 업 하고, 그가 맡는 냄새의 길을 따라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는 방식이다. 롤라>
아쉽게도 600여억원의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줄거리에 길을 터주는 것 외에 튀크베어 감독의 후각 묘사는 쥐스킨트의 묘사력을 따라가기에 숨이 차다. 오히려 영화적으로 <향수> 는 감각보다는 스릴러 본연의 임무를 더 충실히 수행하는 쪽을 택한다. 향수>
그러니 영화 <향수> 는 문학에 대한 영화의 열등감이나 감각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표본으로 남을 것도 같다. 서사가 아닌 묘사의 힘으로 쥐스킨트는 튀크베어를 한판승으로 압도해 버린다. 향수>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교수 심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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