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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향수 '감각묘사는 소설이 한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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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의 색깔있는 영화보기] 향수 '감각묘사는 소설이 한수위'

입력
2007.03.13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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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은 가끔 스크린을 통해 불가능한 것을 꿈 꾼다. 윌리엄 와일러는 <벤허> 의 전차 경주 장면을 촬영한 후, “오! 신이여 정말 내가 이것을 만들었단 말입니까”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기분은 <타이타닉> 으로 아카데미작품상을 탄 후 “나는 세상의 왕이다”를 외친 제임스 카메론의 환호에도 여실히 드러나는 속내이기도 하다. 윌리엄 와일러나 제임스 카메론의 야심이 ‘스펙터클’ 즉 거대한 시각의 재현에 있다면, 영화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 없는 다른 감각을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면 냄새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같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원작 <향수> 는 지난 20여년 동안 꿈의 프로젝트,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로 여겨졌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자가 완강히 영화화를 반대한 데다, “그 곳에는 사람 냄새와 짐승 냄새, 음식 냄새와 질병 냄새, 물과 돌 냄새, 재와 가죽 냄새, 비누 냄새, 갓 구워 낸 빵 냄새, 초에 넣고 끓인 계란 냄새, 국수 냄새,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은 놋그릇 냄새, 샐비어와 맥주와 눈물 냄새, 기름 냄새, 그리고 마르거나 젖은 지푸라기 냄새 등이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같은 문장을 어떻게 시각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향수> 는 냄새에 관한 소설이자, 냄새의 냄새도 맡을 수 있을 것 같은 한 천재의 후각적 방랑을 따라가는 일종의 비틀린 영웅설화이기도 하다. 세상에 워낙 많은 종류의 천재들이 있지만, 냄새의 천재라는 설정 자체가 기괴하고, 소설은 책 갈피갈피마다 수억개의 후각 세포가 뒤엉켜있는 것 같은 경탄할 만한 생생한 후각적 묘사로 뒤덮여 있다.

그간 음식을 통해 인간의 미각을 ‘성과 죽음’이라는 양면거울에 담아낸 영화들은 있었지만, 아마 이렇게 상대를 유혹하고 달뜨게 하는 관능적이고 도발적인 후각의 기능이 전면화 되기는 문학에서도 처음일 것이다.

<롤라 런> 으로 독일영화판에서 가장 기교가 승한 감독으로 정평 나 있는 톰 튀크베어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주인공 그루누이의 후각적 예민함을 시각화한다. 바로 ‘코’를 클로즈 업 하고, 그가 맡는 냄새의 길을 따라 카메라가 훑고 지나가는 방식이다.

아쉽게도 600여억원의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줄거리에 길을 터주는 것 외에 튀크베어 감독의 후각 묘사는 쥐스킨트의 묘사력을 따라가기에 숨이 차다. 오히려 영화적으로 <향수> 는 감각보다는 스릴러 본연의 임무를 더 충실히 수행하는 쪽을 택한다.

그러니 영화 <향수> 는 문학에 대한 영화의 열등감이나 감각적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표본으로 남을 것도 같다. 서사가 아닌 묘사의 힘으로 쥐스킨트는 튀크베어를 한판승으로 압도해 버린다.

영화평론가, 대구사이버대교수 심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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