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안정'을 최우선 정책목표로 삼고 있는 한국은행이 최근 물가 때문에 '말 못할 고민'에 빠져있다. 본격적인 이사철을 앞두고 시중에 풀린 돈이 너무 많아 한풀 꺾인 집값이 언제 되살아 날지 알 수 없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돈줄을 죄려 해도 물가상승률이 너무 낮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은 1.7%에 불과했고 2월에도 2.2%에 그쳐 한은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치의 하한선인 2.5%를 크게 밑돌고 있다.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상승률도 하한선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지난해 물가안정목표의 기준을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포함되는 소비자물가상승률로 바꾸면서 향후 3년(2007~2009년)간 소비자물가안정목표를 3.0±0.5%로 결정했다. 결국 현재의 물가상승률만 놓고 판단하면 오히려 금리를 낮춰 물가를 적당히 자극해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시중 유동성은 여전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 언제든 부동산 투자자금으로 옮겨갈 수 있는 상황이다. 현금과 은행예금 및 금융상품 등을 합한 광의통화(M2) 증가율은 지난달 11%대 초반(평균잔액 기준)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집값 폭등과 함께 지난해 10월 M2 증가율이 두 자릿수로 올라선 후 지급준비율 인상, 총액대출제한 등 각종 유동성 억제책을 내놓았음에도 4개월 연속 두 자릿수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결국 급격히 늘어나는 통화량은 부동산 경기를 비롯한 향후 경제 운영에 큰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지만, 한은의 정책목표는 물가 하나에만 맞춰져 있어 향후 경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 역할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금융연구원은 얼마 전 '정책금리 조정과 경기변동 간 관계의 국제비교' 보고서에서 "경기변동 폭이 우리나라보다 4배 가까이 작은 미국이 1999년 5월 이후 정책금리를 36번이나 조정하며 적극적인 경기조정에 나서는데,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금리조정이 16번에 그쳤다"며 한은의 금리정책이 너무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송재은 연구위원은 "금리정책을 지나치게 안정적으로만 운영하려다 보면 경기안정 효과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한은에 보다 유연한 금리조정 정책을 주문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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