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척이 조그만 무역업을 한다. 사무보조원이 그만두었는데 한 동안 사람을 구하지 못해 걱정하다 인터넷에 조심스럽게 글을 올렸다. 혹시나 했는데, 이틀 말미에 58명이 응모했다. 거짓말같겠지만, 52명이 '4년제 대학 졸업 1~2년차', 4명이 '대졸 전업주부', 2명이 '고졸 유경험자'였다.
면접 비슷한 절차를 거치니 미국 유명 대학 졸업생이 눈에 띄었고, 영어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낙점을 했다. 주 5일, ten to five(오전 10시~오후 5시 근무), 월 100만원이 계약이었고, 혹 퇴근이 늦을 수 있으니 20만원 정도의 +α를 약속했다. 그러나 두번째 월급을 받고 그는 '백수'를 자청했다.
● '괜찮은 일자리' 부족은 당연
그가 일에 정을 붙이지 못하자 그를 불편하게 여겨오던 사장도 퇴직을 허락했다. 그는 유학생 출신이기를 원했나 본데 사장에게 필요한 사람은 사무보조원이었다.
청년들이 쉽게 직장을 구하고, 그것이 '괜찮은 일자리'여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책무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졸자의 체감 실업률이 20%를 상회하고, 청년 백수가 100만 명을 넘어서는 현실을 마냥 정부의 무능으로만 돌릴 순 없다. 사회와 학력의 미스매치(mis_matchㆍ어울리지 않는 결혼), 구인과 구직의 미스매치, 무엇보다 개인적 인식의 미스매치가 문제다.
학력 인플레가 청년실업의 주범이라는 지적은 맞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산업수요에 비해 고학력자가 과도하게 늘었고 이들의 기대가 너무 높다"고 진단했다. 대학 입학생이 1990년 19만 명에서 지난해 33만명으로 늘었고, 50만 명 이상의 취업준비생이 대기하고 있다. 반면 괜찮은 일자리는 최근 3~4년 사이 8만개 이상이 사라졌다.
주 40시간 정도 근무하면서 평균임금의 1.5배를 받는 정규직 사원을 '괜찮은 봉급자'로 규정한다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모든 대졸자가 평등한 간판을 달고 나오지만 사회는 그들을 동등한 대졸자로 수용할 수 없는 미스매치가 불가피하다.
구인ㆍ구직 사이의 간극도 극에 달해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가 가정집이나 소규모 공장을 돌며 안전상황을 점검하는 직원을 뽑는데 석사와 박사 100여 명이 몰려들어 관계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한다.
수자원공사는 일반직 사원 140명을 뽑는데 석사 190명, 박사 4명, 기술사ㆍ회계사 13명이 지원했다지 않은가. '공사'라는 꼬리만 붙으면 400대, 혹은 7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싶다.
자신은 '무슨 일이든 시켜만 주시면…'한다지만 채용하는 입장은 다르다. 어느 사장이, 어느 상사가 석사에게 대문을 지키게 하고, 박사 검침원(?)을 부리면서 마음이 편할 수 있겠는가. '꿈의 직장'이라고 부러움 반 질시 반으로 말하는 공기업 채용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 '4년제 대졸'이 다가 아니다
결국 '개인적 인식의 미스매치' 문제다. 고급인력이란 무엇인가. 누가, 누구를 고급인력으로 여기고 인정하는가. '4년제 대학 졸업자'가 고급인력이라는 인식은 사라진 지 오래다. 석ㆍ박사라는 것만으로 고급인력의 반열에 자동적으로 올라가지도 않는다.
이들 구직자 가운데 4분의 3이 합격하고도 '연봉이나 근무조건이 맞지 않아서' 입사를 포기하거나 백수를 자청한다고 한다. 수능점수표를 들고 대학문을 서성이던 추억으로 그렇게 일터를 찾아서는 안 된다.
구인에 목마른 사회는 고급인력을 원하기보다 '적합한, 혹은 적합하게 될 인물'을 원하고 있다. 스스로 고급인력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적합성'에 부응하려는 노력까지 고급스러워야 한다.
토끼와 거북의 경주에서 왜 거북이 이겼을까. 토끼가 자만한 나머지 낮잠을 자서? 거북이 겸허한 마음으로 쉬지 않고 달려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토끼는 경주의 상대를 거북으로 여기고 있었지만, 거북은 이겨야 할 대상을 자기 자신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정병진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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