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노 대통령은 헌법개정시안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가 펴는 논리 가운데 신뢰라는 단어가 각별하게 느낄 정도로 자주 사용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중에 회견 전문을 놓고 살펴보니 신뢰라는 단어가 모두 15회 사용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 믿음 부재의 정치적 현실
우리 한국사회에 신뢰가 문제이긴 문제인가 보다. 믿음, 불신과 같은 동의어와 반의어를 모두 빼놓고 신뢰라는 말만 15회 사용되었다는 것은, 내게는 신뢰 부재의 정치현실을 상징하는 예로 보였다.
최근 창립 20주년을 맞은 기독교윤리실천(기윤실)에서는 신뢰회복 운동을 선포하였다. 이는 한국사회 자체, 그리고 한국 교회들의 신뢰회복이 그 근본으로부터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일이지만, 오히려 역으로 신뢰 상실의 현실을 입증해 주는 반례가 될 것이다.
신뢰는 일회적 사건을 통해서 형성될 수 없다. 신뢰는 신뢰의 행위가 지속될 때 형성된다.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신뢰란 주고받는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산술적 성격을 갖는다. 믿음을 사려면 믿을 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뢰의 다른 차원도 있다. 오래 전 필자가 학원에서 고3학생들을 가르쳤을 때의 일이다. 월례고사 성적을 발표했을 때 한 학원생이 찾아와 채점 내용과 발표된 성적이 다르니 고쳐달라고 요구해 왔다.
채점된 시험지를 이미 학생들에게 돌려주었지만 그 학생은 시험지를 가져오지 않아 확인이 불가능했다. 난감한 표정이 그 학생에게 역력했다. 성적은 그날로 확정되어야 했고, 다음 날 그 성적이 집으로 발송되어 그에 따라 진학지도와 면담이 이루어지니 말이다.
필자는 그에게 "네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니?"라고 다시 물은 뒤 "너를 신뢰한다"는 말과 함께 성적을 고쳐 주었다. 다음날 그는 시험지를 가져와 내게 학인 시키려 했으나 그걸 보는 대신 "네가 말해준 것으로 충분했어"라고 말했다.
그 후 필자는 예상치 못했던 그 학생의 변화를 보았다. 누군가의 신뢰를 받았다는 데서 오는 밝고 환한 표정이 그 학원생활이 끝날 때까지 그에게 지속되었고, 고3의 찌든 생활에서도 활력을 회복했다. 신뢰의 미학을 체험했던 것이다.
● 진정 통하는 정치 쌓아가야
성서에는 제이콥의 이야기가 나온다. 제이콥은 형제들의 배신으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 노예로 일하면서 집주인의 신뢰를 받아 그는 그 집안의 가정총무가 되었다.
그러다가 안주인의 유혹을 거절한 대가로 모함 받고 감옥에 갔지만, 거기서도 신뢰를 얻어 감옥의 제반 사무를 위임받아 처리할 정도가 되었다. 이후 누명이 풀리고 기회를 얻은 그는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배신으로 점철 당한 제이콥이 배신으로 갚지 않고 스스로 신뢰로 무장한 결과였다.
정치 이야기로 돌아가자. 한국정치에 신뢰는 없다. 신뢰의 산술로는 방법이 없다. 그러면 신뢰의 미학은 어떤가. 우리의 정치가들은 이런 미학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점에서 한국의 정치의 문제는 정치 과잉이 아니라 진정한 정치의 부재에 있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신뢰가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을 어떻게 믿냐고? 그건 믿어봐야만 알 수 있다.
김선욱(숭실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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