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벌린 / 미다스북스
1883년 3월 14일 칼 마르크스가 65세로 사망했다. 이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추종자와 적을 함께 거느리게 된 인물, 마르크스는 폐종양으로 런던의 자택 서재 의자에서 앉은 채로 쓸쓸히 숨을 거두고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있는 아내 곁에 묻혔다.
수많은 마르크스 평전 중에서도 이사야 벌린(1909~1997)의 이 책을 단연 최고로 꼽고 싶다.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사상가ㆍ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은 언젠가 이 칼럼에서 따로 다뤄야 할 인물이지만, 그가 마르크스 평전을 쓴 것은 1939년, 놀랍게도 불과 30세 때다.
‘서구세계에서 공산주의라는 주제를 구체적으로 다룬 최초의 연구서’로 평가되기도 하는 이 평전에서 이사야 벌린은 인간 마르크스의 생애를 숨 막힐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하면서, 지성사적으로 그의 사상의 형성 과정을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서술하고 있다. “생애의 대부분을 가난과 빈곤 속에 살았던 마르크스는 두 아들과 딸, 세 명의 자식이 죽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는 선천적으로 강하고 능동적이며 실제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 부르주아지의 우둔함은 물론 지식인들의 자기만족적인 미사여구와 주정주의도 혐오했다… 그의 학설이 출현한 후에는 그 어떤 것도 결코 전과 동일한 기준에 따라 이야기될 수 없었다…”
이 책이 한국에 처음 번역된 것은 1982년이다. 마르크스=빨간도깨비 등식이 막 ‘해금’이란 이름 아래 흐물흐물해지던 그 시절, 이 책을 읽던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당시 판본은 절판됐고 2001년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어 새로 번역출간됐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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