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막을 내린 MBC 주말드라마 '하얀 거탑'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드라마의 무대는 대학종합병원이지만 권력투쟁이 벌어지는 모든 유형의 조직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청자마다 이 드라마를 '읽는' 방식이 달랐겠지만, 이렇게 읽어보는 건 어떨까.
이 드라마는 장준혁(김명민)과 최도영(이선균)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돼 있지만, 최도영은 장준혁의 캐릭터를 살리는 대비 효과를 위해 설정된 인물이다. 장준혁은 야망에 불타는 외과의사, 최도영은 양심에 충실한 내과의사다.
장준혁은 후배·제자 의사들을 휘어잡아 '장준혁 마피아'를 조직한다. 장준혁은 그들을 '얘들'로 다루며 강한 '보스 기질'을 발휘하는 반면, 최도영은 서열의식을 초월해 의사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긴다.
● 우리사회의 인맥 만들기 전쟁
마피아는 보스에게 충성하면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보장하는 공동체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선 비리도 불사한다. 보스는 그런 전투성 배양을 위해 인간적 유대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그 주요 수단은 술과 특혜 부여다. 보스는 부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비리를 저질러서라도 끝까지 돌봐준다.
이 드라마는 장준혁을 악(惡)의 편에 설정하고서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반면 선(善)을 대변하는 최도영에게도 인간적 면모가 있으련만 그건 의도적으로 배제된다. 최도영은 늘 자신의 양심에 충실한 모습으로만 그려질 뿐이다. 그의 인간관계는 어려움에 처한 후배에게 위로만 줄 수 있을 뿐, '해결사' 역할엔 전혀 근접하지 못한다.
장준혁이 암에 걸려 죽음으로써 드라마 막판은 최루성 신파가 되었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라도 장준혁·최도영을 놓고 시청자 인기투표를 했다면, 장준혁이 표를 더 많이 얻었을 가능성이 높다.
왜 그런가? 우리의 삶이 그렇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에서건 자신을 돌봐주는 상관 하나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그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정도의 차이일 뿐 우리는 다 나름의 마피아를 꾸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마피아는 '사람 사는 인정', 남의 마피아는 '추악한 탐욕'으로 보는 이중기준이 심리적 정당화 기제다. 어느 마피아에건 가담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긴 정말 어렵다. 좋은 학벌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마피아 시스템 때문이다.
마피아를 만들지 않고 리더가 되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고 말할 순 없을망정 유능한 리더가 되긴 어렵다. 자신을 위해 헌신할 참모진을 꾸리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여하한 경우라도 '끝까지 뒤를 봐주는' 심성이 결여된 리더를 위해 충성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리더십의 딜레마다. 어떤 유형의 조직에서건 선거가 깨끗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젠 '보스 정치'가 청산됐다고 주장하지만, 마피아의 구성ㆍ운영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끼리끼리 뜯어먹으며 이익을 배타적으로 향유하는 작태는 여전하다.
● 보스정치의 운영 달라졌을 뿐
장준혁 식 삶이 드라마 특유의 과장법이라는 걸 감안하고 들어간다면, 지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인맥 만들기 전쟁'을 '장준혁 현상'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접대산업·특수대학원·호텔·인터넷 등이 그런 전쟁 특수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직장인의 83.8%가 '인맥은 능력'으로 여기고 있으며, 대학생의 91.5%가 인맥의 중요성을 긍정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마피아 만들기'는 시대정신이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강해지는 안전의 욕구는 필연적으로 마피아라는 울타리를 갈구하게 돼 있다. 시청자들이 장준혁에게 돌을 던지기보다는 오히려 공감과 더불어 애정마저 느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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