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퇴행성에 대한 비판은 1990년대 ‘젊은 문학’에 대해 퍼부어진 익숙한 야유일지 모른다. 동전의 양면으로서 대중적 가치를 추구하는 논리는 ‘출판 자본’의 탄생 이래 반복돼 왔다. 급변하는 창작 환경 속에서 머뭇거리거나 웃자라는 우리 문학의 현재를 총점검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문학과지성사가 2월 1일 개원한 ‘문지문화원 사이(공동 대표 이인성ㆍ채호기)’가 본격 담론의 시동을 걸었다. 지난 9일 마포구 동교동 강의실에서는 70여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제 1회 문지문화원 개원 심포지엄 ‘경계 / 사이, 그리고 창조성’이 열려 활발한 논의를 끌어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지적한 대로 예술가도 컴퓨터 앞에 앉아 구상안을 작성하고 이메일을 보내고 진행 상황을 체크해야 하는 이 시대, 한국 문학의 입지는 어떻게 구축되고 있는지에 대해 조망해 보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이광호 교수는 “2000년대 한국 문학이 사회 현상과 주체의 개념으로부터 유리, 환상 속으로 퇴행해 자폐적 유희에 빠짐으로써 저주를 맞게 됐다”고 지적, 지금의 문학이 복잡다기해진 연원을 밝혔다.
이 교수는 “예술이 자기 육체를 새롭게 하지 못하면 낡은 자율성이란 결국 예술의 죽음”이라며 “예술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술은 예술 아닌 것들과 접속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를 정직하게 응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몽과 고백의 문법으로 정치적 담론의 영향력을 행사하던 근대 이후의 문학은 끝났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아울러 “시장으로부터 고립, 난해한 화법으로 함몰돼 쇠퇴하는 문학과 함께 대중적 작가를 외면하는 평단도 문제”라고도 말했다. “이 시대의 문학은 잡스러운 것들로부터 자신의 상상력과 문법을 새롭게 하려 한다. 그것은 문학이 가진 최후의 미학적 가능성일 것이다.” 문학과 예술은 ‘새로운 낡음’을 사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라는 요청이다.
이 자리에는 또 성기완 시인도 참석해 “기존 시스템에 대해 길항하는 문화 요소, 즉 노이즈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주류는 아니지만, 기존 문화 체계의 오작동에 대한 징후를 민감히 포착하는 현상들에 대한 근본적 재인식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성 시인은 UCC, 즉 크리에이티브 유저를 그 예로 들었다. 향후 문화는 창조적 사용자라는 새로운 거점 위에 형성돼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문지문화원은 앞으로 심포지엄, 세미나, 커뮤니티 활동을 비롯해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전시와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우리 시대의 문화적 현안들에 대한 담론을 추출할 예정이다.
사이 학교, 사이 문화 카페, 사이 워크숍, 사이 푸른 강좌 등의 자리를 통해 석학ㆍ문화 종사자와 일반의 거리를 좁히고, 진보적 문화와 그 교육의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공간이다. 첫 날 행사에는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참석, 축시로 장도를 기원했다. (www.saii.or.kr)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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