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前 나온 '꿈의 車'…지금은 못 만드나 안 만드나
19세기 말, 미국의 시대정신은 발명가들이 이끌었다. 백열등과 축음기를 발명한 에디슨을 필두로 전화를 발명한 벨, 교류전류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테슬라와 같은 기라성 같은 발명가들의 이름이 그 시대의 역사에 아로새겨져 있다. 20세기 초반까지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현실화하는 발명가들이 끊이지 않고 나왔고 그것이 유럽에 비해서 한참 뒤쳐져 있던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나라로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였다. 당시의 미국인들은 혁신적인 생각들을 존경했을 뿐만 아니라 특허라는 제도를 통해 발명가들에게 경제적인 대가도 충분히 지불했다.
이러한 발명가 시대의 끄트머리에 영화 <미국의 꿈 터커> (프란시스 코플라 감독, 1988)의 주인공 프레스톤 터커가 있다. 그의 실재 삶이 영화의 바탕이 된 것이다. 1903년, 미시건주 카팍에서 태어난 터커는 어려서부터 자동차를 너무 좋아했다. 열 여섯에 이미 오래된 중고차를 고쳐 파는 일을 시작했고 경찰들이 사용하는 고성능 자동차를 곁에서 보려고 경찰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이어 시작한 일은 자동차 판매인. 여기서 수완을 보여 돈을 좀 모았다. 이러한 경제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터커는 해리 밀러와 경주용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고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잭슨 히긴스와 함께 포탑을 만들고 어뢰정을 건조했다. 미국의>
전쟁은 끝났고 터커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꿈이었던, 자신의 이름을 단 자동차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1946년, 터커는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B29 폭격기를 만들던 시카고의 공장을 임대해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고 100일만에 첫 번째 제품을 완성했다. 터커가 만들어낸 자동차의 컨셉은 ‘혁신적인 면모를 갖춘 안전한 차’. 비행기를 제작할 때 사용되었던 기술과 또 다른 기술들을 응용해서 공기역학을 고려한 외양을 갖춘 미래 지향적인 자동차를 만들었다. 뒤 트렁크 자리에 헬리콥터 엔진을 개조한 6기통 엔진을 앉혔는데 최대출력이 166마력이나 되었을 뿐만 아니라 1리터의 연료로 10㎞를 주행할 수 있을 정도로 연비도 뛰어났다. 그 밖에도 공기역학 시스템, 안전벨트, 네 바퀴 디스크 브레이크, 연료 분사시스템과 같이 오늘날 최신 자동차의 광고카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터커의 꿈을 실은 미래형 자동차는 성공하지 못했다. 뛰어난 성능이 대중의 열광을 이끌어내지도 못했고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커다란 자동차 기업들은 터커 자동차가 시장에 진입하는데 커다란 장벽이었다. 미국의 3대 회사였던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1949년 미국 증권 감독위원회를 통해 사기 및 다른 경제 범죄혐의로 터커를 고발했다. 터커의 회사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이 배신을 하고 불리한 증언을 했다. 터커는 궁지에 몰렸다. 영화에서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지점. 터커의 감동적인 법정 연설이 터져 나왔다.
“거대한 힘이 개인의 아이디어와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이 나라의 장래를 말살시키는 행위이다. 내가 태어난 조국이 나에게 준 고통과 슬픔이다. (중략) 나는 조국의 건전한 양심을 믿는다. 미국의 꿈 또한 영원하리라 믿는다.”
1950년 1월 22일에 열린 재판에서 터커는 혐의를 벗지만 이미 공장도 없는 껍데기 회사만 남았다. 미국의 ‘발명가 시대’도 그와 함께 막을 내렸다. 터커는 총 51대의 ‘터커 토르페도’를 만들었는데 현재는 47대가 남아 20년을 앞섰던 세기의 명차 목록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터커는 실패했지만 자동차는 계속 늘어만 간다. 터커가 고안했던 장치들도 모두 현대의 자동차에 채용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기술들이 계속 덧입혀졌다. 그 덕에 오늘날의 고급 자동차들은 새로운 기술의 경연장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새로이 개발되고 채용되는 기술들이 편의장치 중심이고 자동차의 핵심적인 부분인 연료의 연소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답보상태에 머물러있다. 60년이 흘렀는데도 ‘터커 토르페도’의 크기에 그 자동차가 실현했던 연비보다 좋은 자동차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비즈니스위크 3월 12일자에 따르면 많은 상금을 걸어 그 분야의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미국의 X상 재단이 최고의 연료 효율을 갖춘 자동차를 개발하는 사람에게 약 250억 원을 주겠다는 공고를 냈다. 이 상을 마련한 이유는 석유의존도를 낮추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40%가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자동차의 연비가 리터당 40㎞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재단 측의 생각.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곧 그에 해당하는 연비를 달성할 것이라 공언하고 있지만 조금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연비 좋은 엔진의 개발이 우주 개발보다 더 어렵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석유나 석탄과 같은 화석 연료를 대체하는 에너지원이 개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화석연료는 오래 전부터 고갈 문제가 예견되었다. 아직까지 상당한 양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가까운 미래에는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기체가 땅 속에 묻혀 높은 열과 압력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다 쓰고 없어졌을 때를 대비해야만 한다. 그리고 화석 연료를 대규모로 태우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기체들이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교란하는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도 대체 에너지 개발이 시급한 형편이다.
지금 현재의 기술 수준에서 현실화가 가능한 것은 하이브리드 자동차 정도. 이 자동차는 아직까지 대체에너지만으로 자동차를 움직일 기술이 없어서 주로 내연기관을 쓰면서 보조적으로 전기를 사용한다.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날아가 버리는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회수하여 다시 동력원으로 쓸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대체에너지를 마련할 때까지 사용할 징검다리 기술. 아무쪼록 X상 재단의 상금이 기폭제가 되어 혁신적인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 과학상금 타면 백만장자-수학난제 풀이에 100만弗 민간 우주선에는 1,000만弗
역사를 살펴보면 어려운 과학적 문제에 큰 상금을 걸어 사람들로 하여금 해결책에 골몰하도록 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1889년 스웨덴과 노르웨이를 통치하고 있던 오스카르 2세는 60번째 생일을 맞아 태양과 행성, 그리고 소행성과 수많은 위성들이 현재의 운동 상태를 유지할 것인가를 공개적으로 물었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2만5,000크로나의 상금을 주겠다고 했다.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지만 상금은 파리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앙리 푸앙카레에게 돌아갔다.
1908년, 독일의 파울 볼프스켄의 유언에 따라 괴팅겐 왕립과학원은 2007년 9월 13일까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는 사람에게 10만 마르크를 주겠다고 했다. 결국 상금은 미국의 앤드류 와일즈가 차지했는데 상금을 건지 무려 90년이 지난 1997년 6월 27일이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문제가 해결되자 2000년 미국의 클레이 수학연구소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7개 선정해서 문제 당 10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그 중에서 우주의 형태를 밝히는 것과 관련된 위상기학학 문제인 '푸앙카레 추측'의 해법은 러시아의 수학자 페렐만이 제시해 검증을 마쳤으나 그는 상금 받기를 거부했다. 'P 대 NP' 문제와 리만 가설에 대한 문제는 해결했다는 사람이 나와서 검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비행 횡단이, 2만5,000달러의 상금을 건 오르테이그 상에 의해 당겨졌다고 믿는 X상 재단은 이미 민간 우주여행을 가능하게 한 공로를 인정해 스페이스십원에게 1,000만 달러를 시상했고 맞춤형 의약품 개발을 가능하도록 빠르게 유전자 지도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사람에게도 1,000만 달러를 시상하겠다고 공지했다. X상 재단이 자동차의 연비 혁신에 건 상금은 2,500만 달러로 지금까지 나온 상금 중에서 가장 크다.
과학평론가·문지문화원 <사이> 기획실장 주일우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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