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8차 협상이 오늘 끝나게 되지만, 아직 합의하지 못한 이슈에 대해서는 3월말까지 고위급, 실무자급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합의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이번 협상의 중요성을 반영하듯이 언론매체에서는 FTA 협상에 대한 기사가 많다. 하지만 FTA 체결로 인한 소비자이익이 과소평가되고, 생산자손실은 과대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의약품과 농업에서 특히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복제약값 인하 등 과소평가
예를 들어, 얼마 전 보도된 모 공중파 방송에 따르면 미국은 신약에 대한 약값을 올려주도록 요구하기 때문에 국내 소비자들은 비싼 값을 지불하고 약을 사먹어야 하므로 소비자들의 이익이 침해당할 것이고, 우리 제약사들이 많이 생산하는 복제약값을 오리지널약값의 절반 수준으로 인하하도록 함으로써 국내 제약사들의 이익이 크게 침해받게 된다는 것이다. 신약값 인상으로 발생하는 소비자 손실을 강조했으면, 복제약값 인하로 인한 소비자 이익을 언급했어야만 했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의약품 매출액의 70%는 국내 제약사들에 의한 복제약이고, 30%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판매하고 있다. 현재 국내 복제약은 오리지널약값의 80% 내외에서 판매되고 있으나,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50% 수준이다. 복제약값이 50%선으로 낮아지게 되면 상당한 규모의 소비자 이익이 발생하게 됨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소비자 이익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면서 최저가격제도로 신약값이 인상되면, 보건복지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약품 선별등재제도도 의료보험재정부담 축소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최저가격제도는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절대적으로 많이 소비되는 복제약값 인하로 인한 재정부담 축소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상대국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것만이 포함된 FTA는 체결될 수 없다. 일반 제조업과는 달리 의약품은 우리나라가 불리하고, 일정 부분 미국측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중 하나가 미국이 우리나라 심사평가원을 통해 신약에 대한 재심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미국과의 FTA로 국내 소비자 이익이 심각하게 침해받게 될 것으로 주장하지만, 약값 재심기회 부여는 복지부의 선별등재제도 실시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국내 환자에게 필요한 신약이 국내에서 시판되도록 함으로써 소비자 이익을 확대시킬 수 있다. 약값 인상으로 가난한 환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나, 저소득층에 대한 소득지원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복지부는 선별등재제도 추진배경으로 재정악화를 들고 있으나, 우리 제약업 구조조정에 더 큰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의약품 유통이 불투명해 제약업 판매비 및 일반관리비가 35% 수준으로 높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의 비중은 4~5%로 외국 기업의 10~25%에 비해 턱없이 낮다.
●득실 균형 있게 평가해야
1994년부터 강제 실시된 ‘의약품 제조 및 품질 관리기준(KGMP)’에도 불구하고, 해외시장 진출이 미흡한 것을 대형 다국적 제약사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품질 경쟁력을 높인 인도의 복제약 기업들은 년간 30억 달러의 복제약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고, 60여개 인도 제약사가 미국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았다. 또한 베트남 의약품 수입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인도에 이어 2위 수출국이지만, 품질불량 건수는 가장 많다.
우리 제약사들이 인도보다 낮은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국내에서 큰 노력 없이도 안정된 매출이 보장되었던 의료보험 때문일 수 있다. 통폐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연구개발 투자로 국제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한미 FTA 언론 보도도 문제점만 부각시키기 보다는 득실을 균형 있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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