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리더십에 직원 고민 하나하나 상담
*"성공하려면 행복한 가정부터…" 원칙 지켜
#1. 미국계 제약회사인 한국스티펠의 권선주(60) 사장은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한다. 대신 회사에서 직원들과 식사한다. 10년째 매일 아침 8시 회사 직원 50여명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회사얘기부터 사적 고민까지 주고 받는다. 권 사장은 "어느덧 환갑을 눈 앞에 나이가 돼 이젠 회사 경영자라기보다는 어머니 입장에서 직원들을 대한다"고 말했다.
#2. 항공 특송회사인 페덱스코리아의 채은미(45) 사장은 전국 배송직원까지 전직원 700여명의 이름과 얼굴을 모두 외운다. 특별히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다.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게 말을 주고 받으려면 최소한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지난해 8월 사장에 오르자마자 이름 외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국내 외국계 기업에서 여성들의 머리 위에 드리웠던 '유리천장'이 깨지고 있다.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CEO 자리에 여성들이 대거 올라서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테미 오버비(50) 대표, 한국 스티펠의 권 사장, 페덱스코리아의 채 사장, PAG코리아의 이향림(47) 사장 등 여성CEO들이 줄줄이 배출되고 있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뭔가 특별한 공통점이 있다. 외국계 여성 CEO에게선 부하를 배려하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리더십과 성실하고 꼼꼼한 일처리 능력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오버비 대표는 1995년부터 암참 이사로 일해왔는데, 암참은 최근 그녀를 영원히 붙잡아두기 위해 과거에는 없던 CEO직을 부여했다. 안살림만 챙기는 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암참을 대표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우리나라 전경련과 비교한다면, 상근 부회장이 회장의 직책까지 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암참 관계자는 "회원사가 오버비 대표에게 전권을 준 것은 암참에서 12년 이상 보여준 꼼꼼한 일처리에 감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버비 대표는 언제나 완벽한 일처리를 강조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부하들과 쿠키를 함께 하며 인생상담을 함께 할 정도로 자상한 성격"이라고 덧붙였다.
수입차 업계의 유일한 여성 CEO인 PAG코리아(볼보 재규어 랜드로버 수입업체) 이 대표도 특유의 '언니 같은 푸근함'이 성공의 무기였다.
이화여대 생물학과 출신인 이 대표의 첫번째 직업은 외국계 회사에서 재무관리 담당자였다. 그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재무관리의 기본원칙에 충실해 온 덕에 어느덧 대표자리에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여성 CEO에게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은 일 못지 않게 가정을 중시한다는 사실. 일부에서는 여성 CEO를 '성공을 위해 가정을 포기한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성공하려면 오히려 행복한 가정이 있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에 여성 CEO 모두 충실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스티펠 권 사장은 자녀교육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남1녀를 뒀는데, 딸은 한양대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들은 최근 창원지법 판사로 임용됐다.
그는 "1986년 이후 21년간 회사 대표로 일했지만 집에서만큼은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PAG코리아 이 대표도 "중학교에 다니는 딸의 교육과 회사 일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서슴지 않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페덱스코리아 채 사장도 "고3인 아들의 학교와 학원 시간표를 수첩에 메모해 매일 체크하고 있으며 휴일에 틈만 날 때마다 서점에 들러 아들이 부탁한 참고서를 구입한다"고 말했다.
일할 때와 쉴 때를 확실히 구분하는 것도 성공 비결이다. 오버비 대표는 다소곳한 외모와는 달리 주말마다 자유로 등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로 즐기는 속도광이다.
페덱스코리아 채 사장은 남편과 함께 나가는 주말 골프가 취미다. 한국스티펠 권 사장은 서예를, PAG코리아 이 대표는 조용한 곳에서 독서하는 게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밝혔다.
유인호 기자 yi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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