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직업은? 재산은? 이혼했나?…소득·재직자료 요구까지…불허지침 '나 몰라라'
서울 도봉구 A고는 최근 학부모의 재산 내역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형식의 가정환경조사서를 각 가정에 보냈다. ‘가옥란’에 소유, 전세, 월세 여부는 물론, 방이 몇 칸인지 기재하게 했고, ‘재산 정도’에는 부동산과 동산, 월 수입, 월 저축 항목까지 만들어놓았다.
서울 관악구 B고는 신입생들에게 학부모의 직업과 회사명, 직책을 비롯해 동산ㆍ부동산 소유금액, 월 소득액 등을 기재토록 하는 학생카드를 배포했다가 인권침해 시비가 일자 뒤늦게 이를 수거하는 소동을 벌였다.
교육당국이 매년 신학기마다 가정환경조사서를 활용하는 경우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항목을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있음에도 불구, 일선 학교에서는 학부모의 직업과 재산 내역 위주로 가정환경을 파악하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환경기록부’, ‘학생카드’, ‘환경조사서’ 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가정환경조사는 학기 초 학생상담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학교장 직권으로 행해진다.
서울 강북의 C사립초등학교는 올해 신입생들에게 학부모의 소득증빙자료와 재직증명서 제출을 요구,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았다. 신입생 학부모 김모(38)씨는 “추첨을 통해 어렵게 입학했는데, 재산이 적다는 이유로 아이가 차별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학부모의 직위와 재산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겠다는 것은 불순한 의도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부모와의 이혼이나 사별 등으로 ‘한부모 가정’이 늘고 있으나, 편부ㆍ편모 등 가족상황을 물어보는 조사 항목도 여전하다. 대부분의 학교가 아버지와 어머니 정보란을 따로 만들어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고민을 안겨주는 게 현실이다. 서울 성북구 D중학교 2학년 한모(14)양은 “몇 년 전 부모님께서 이혼하셨는데 가정환경조사서에 부(父)와 모(母)란을 따로 두는 바람에 그냥 이혼한 엄마 이름만 적어냈어요. 얼마 있으면 아빠가 재혼하는데…”라고 털어놓았다.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부터 학기 초에 학부모의 주민등록이나 직위, 수입 등 개인정보나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내용을 가정환경조사서에서 삭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전국 시ㆍ도 교육청에 보내왔다.
교육부 교육정책과 관계자는 “학부모의 재산이나 직업 항목을 가정환경조사에서 빼는 대신, 비상연락용 휴대폰이나 학생의 특성 등을 자유롭게 기재하도록 권하고 있다”며 “그러나 가정환경조사서가 교육부 의무사항이 아닌데다 학교장 직권으로 이뤄져 감독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여성민우회 최진협 연구원은 “해마다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는 가정환경조사서 대신 각급 담임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개별 상담을 통해 환경을 조사하는 방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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