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공세 - 자동차·섬유·무역구제…한국 다소 양보 불구, 美 '섬유 입장' 강경
*한국이 수세 - 농산물·지재권·의약품…美 쇠고기 들어오면 송아지값 20% 하락
여덟 차례의 본협상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고위급 회담으로 넘어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주요 쟁점들은 하나하나가 국내 관련 산업과 종사자들의 숨통을 죌 정도로 파급력 이 큰 사안들이다.
이제부터 통상 강국 미국과의 ‘딜’ 하나하나가 바로 해당 산업의 부흥을 이끌 수도 있고, 반대로 파탄을 몰고올 수도 있다.
한국측이 공세적 입장인 자동차ㆍ섬유ㆍ무역구제 분야에는 수많은 잠재적 이익이 있다. 미국의 자동차ㆍ섬유시장을 열지 못하면 현 정부는 ‘FTA를 왜 하나’라는 비판과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미 양국의 자동차 관세가 즉시 철폐되고 협정이 정상대로 2008년에 발효되면 자동차 부문에서 한해 8억6,000만 달러(10.7% 증가)의 수출 증대가 예상된다.
그러나 미국이 협상 막판에 자국의 자동차 관세 수성 의지를 밝히면서 한국측에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측은 자국 자동차산업이 사양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산업 보호를 위해서라도 자동차 관세를 쉽게 철폐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한미FT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으로 당연시했던 부문에서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에 따르면 섬유 분야의 경우 양국 관세가 철폐될 경우 2억 달러, 원산지 규정이 완화할 경우 4억 달러의 추가 수출 증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미국이 요구한 섬유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받아주고 관세 철폐 요구 품목을 1,598개에서 85개로 축소하는 선까지 양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이 내놓은 관세철폐 품목수가 훨씬 더 적은 상황이어서 애를 태우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무역보복 조치를 완화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공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은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등으로 지난 25년간 대미수출량의 6.8%, 373억 달러 규모의 무역제재를 받았다.
소송비용과 시간을 생각하면 피해액은 더욱 커진다. 한국은 미국측에 반덤핑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핵심인 비합산(미국의 산업피해 판정 시 한국산을 계산에서 제외하는 것) 요구는 철회하는 분위기다.
한국측이 수세에 몰려 있는 농산물, 지적재산권, 무역구제 등은 하나라도 더 양보할 경우, 바로 가격폭락, 고용감소 등 실질적인 국내 피해로 이어지는 분야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미FTA로 관세가 완전 철폐되면 국내산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의 가격은 평균 7.8% 하락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 감소도 7만~14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쌀을 제외한 곡물과 유지작물(식용기름을 짜기 위해 심는 작물)의 관세를 50% 인하하고 나머지 품목은 즉시 관세를 철폐할 경우 생산감소액은 2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또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전면 재개되면 국내 송아지 값은 최대 20% 급락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농업 분야에서 한국은 당초 제시한 1,531개 품목 가운데 100여개 정도만 개방에서 제외하는 양보안을 내놓은 상태다. 관세를 부과하는 품목기준 분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일반 품목 기준으로 하면 10여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쇠고기, 돼지고기, 식용 콩, 오렌지(감귤), 사과, 배, 감자, 양파, 고추, 마늘, 참깨, 인삼 등인데 미국의 공세로 볼 때 이마저 얼마나 지켜낼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의약품 분야에서 특허기간을 5년 연장하는 미국안을 받아들일 경우, 국민의료비 부담액은 1조원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보험약가를 약효별로 선별 등재하는 상황에서 미국 요구대로 이의제기기구를 설치할 경우 3조원의 추가 국민부담이 예상된다는 자료도 있다.
저작권자 사망 후 저작권 보호기간을 50년에서 70년으로 연장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한국은 로열티로 연간 2,000억원 이상을 더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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