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 작가정신
*읽는다는 것의 의미 "생명을 맛보는 느낌"
1998년 5월 무라카미 류가 방한했을 때 인터뷰한 적이 있다. “현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이 내 작품의 독자”라고 한 그의 말이 기억난다. 이 책이 나온 것은 1988년, 일본이 소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경제침체에 빠지기 직전이다. 버블은 부풀어 오를 대로 올라, 터지기 직전의 쾌락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맛보려 한 듯한 시기였다.
류는 이 시기 그 자신의 표현으로 “인생에서 최고의 낭비를 즐기며” 이 책을 썼다. 유럽 남부의 저 아름답다는 코트다쥐르 해안에서 맛본 ‘달콤한 악마’ 무스쇼콜라부터, 북아프리카에서 만난 ‘시원의 맛’ 쿠스쿠스까지, 지구상 32가지 요리를 각각 단편소설로 만들었다. 모두 요리를 매개로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군상의 허무하고도 감각적인 이야기다.
하필이면 칼럼 첫 회에 일본 작가의 퇴폐적으로 보이는 소설을 골랐느냐는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류는 ‘일본 근대문학에 사망 선고를 내린 작가’로 불린다. 그는 위태위태한 인생들의 이야기를, 아주 끝장까지 함께 가 보자는 투로 쓴다. 그것이 바로 그의 미덕이다. 32가지에 한국요리 삼계탕이 들어 있다. 류는 삼계탕을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생명을 입 속에 넣는 듯한 느낌을 준다”라고 표현했다.
‘오늘의 책’은 신간 안내도, 고전ㆍ명저 목록도 아니다. 숨어 있지만, 달콤한 악마처럼 책읽기의 맛을 주는 그런 책들을 오늘의 역사ㆍ인물과 연결시켜 골라보려고 한다.
하종오 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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