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ㆍ13 합의' 이행을 위한 뉴욕실무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해제 문제, 적성국교역금지법에 의한 경제제재 해제,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핵 폐기 초기이행조치, 평화체제 구축 등 북ㆍ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다뤄야 할 거의 모든 의제를 다뤘다.
구체적 결과를 공개하진 않았지만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회담이 "건설적"이었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 포용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재확인
북핵 해결을 위한 첫 실무회의에서 평화협정 체결과 외교관계 수립까지 논의함으로써 북ㆍ미 관계의 급진전이 예상된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인 2000년 10월 북ㆍ미 공동코뮈니케를 만들 때와 유사한 북ㆍ미 관계 개선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무기와 모든 핵개발 계획의 완전포기를 전제로 한국전쟁 종전선언, 북ㆍ미 관계 정상화, 에너지 및 경제 지원 등을 제시하고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현안을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북ㆍ미 관계 개선 움직임이 빨라진 것은 북한이 핵실험이란 '충격요법'을 통해 미국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퇴진하는 등 대북정책에 변화 조짐이 나타났다.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핵 폐기(CVID) 원칙을 고수하면서 양자회담 진행, 동시행동원칙 수용, '잘못된 행동'에 보상 등의 정책 변화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핵실험 이후 미국은 핵확산 방지와 비핵화 실현을 위해서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북핵 해결을 늦출 경우 핵 보유고는 늘어나고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실험으로 카드가 늘었다. 핵무기와 플루토늄 폐기는 2단계 협상으로 남겨두고 핵 시설 '불능화' 만으로도 에너지 지원이라는 실리를 얻고 기타 현안 해결을 위한 실무그룹회의를 진행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됐다.
하지만 미국의 국내 정치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북한도 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 경제 재건에 주력해야 할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북한은 핵시설에 대한 폐기라는 '전략적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은 결단하기 어렵고 한번 결정한 정책에 대해서는 '속도전식'으로 밀고 나가는 통치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북한은 제네바합의 이후 잃어버린 10여년의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 북ㆍ미 관계 개선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도 임기 중 북핵 문제를 해결하여 핵확산의 오명을 벗어던지려 할 것이다. 결과론이지만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합의를 유지하면서 경수로 핵심부품이 들어갈 때와 키를 넘겨줄 때 북한의 모든 핵의혹시설의 사찰과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요구했다면 지금쯤 북핵 문제는 해결되고 북한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됐을 것이다.
원래 경수로 제공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완공하여 비핵화가 완료될 때 가동하는 턴키 방식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미국도 대북정책의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 잃어버린 시간 많아, 가속도 내야
핵실험 이후 대북 강경정책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시 행정부가 깨달은 것은 다행이다. 최근 연이은 북ㆍ미 양자접촉과 현안문제의 포괄적 접근은 클린턴 행정부의 '관여(engagement) 정책'과 유사한 움직임이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페리 프로세스와 유사한 새로운 버전의 평화프로세스를 만들 때 북한문제는 풀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문제는 동시행동원칙에 입각한 일괄타결 등 '포용정책'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란 것을 재확인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북핵 해결을 위한 성공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지금부터 가속도를 내야 한다.
고유환ㆍ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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