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건집 지음 / 이른아침 발행ㆍ전2권 각권 448~512쪽ㆍ각권 3만원
‘나라의 은혜에 보답 못한 늙은 서생 / 차 마시는 버릇에 젖어 세상일은 잊었다네 / 눈보라 치는 밤 그윽한 서재에 홀로 누워 / 돌솥의 솔바람소리 즐겨 듣고 있다네’ - 정몽주 <석정전다(石鼎煎茶)>석정전다(石鼎煎茶)>
‘공명은 진정 그림의 떡이고 / 속세에 사는 몸 세파를 따르는 어려움 있네 / 때마침 산승이 이르렀기에 / 한 잔 차 앞에 놓고 청담을 논한다네’ 서거정 <우차잠상인(又次岑上人)>우차잠상인(又次岑上人)>
우리네 옛사람 중엔 차인(茶人)이 많았다. 그들은 찻잔을 마주하고 앉아 교우를 깊게 했고, 은은한 다향을 음미하며 시름을 떨쳤다. 20여 년을 차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한국사 5,000년 위에 차의 역사를 고스란히 포갠다. 합쳐서 960쪽에 달하는, 실팍한 두 권의 책은 차에 관한 유물 기록 시문 등을 총괄하며 첫 ‘한국 차문화 통사’를 자임한다.
저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적어도 4세기 무렵엔 차를 마시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차의 기원에 대해선 자생설과 전래설이 팽팽하지만, 삼국시대에 불교가 중국에서 유입되면서 음다(飮茶ㆍ차를 마심) 문화 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고구려 고분에서 발견된 동전 모양의 찻덩어리나 신라 화랑들이 차를 마시며 풍류를 즐겼다는 기록은 한국 차문화의 연원이 깊음을 방증한다.
차가 대중화한 요즘을 빼면, 자고 이래 음다는 귀족적 문화였다. 차는 상류층 사회에서만 조곤조곤 유통되던 귀한 물품이었고, 차를 마시는 일은 자신을 남과 구별짓는 사회적 행위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차문화의 사회적 의미보다는 그것이 고매한 정신문화에 기여한 바를 보여주는 데에 관심을 둔다. 선승 관료 문인 등 200명에 달하는 차인들의 시문과 행적을 실은 데서 저자의 진의가 오롯이 묻어난다.
“요즘 차문화는 자기 수련이 아닌 욕구 충족”이라는 저자의 질타에 동의할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다만 저자 스스로 이 책이 통사라고 밝히면서도. 사료를 통한 충실한 고증보다는 차에 관한 시문을 음미하는데 치우쳐 못내 아쉽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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