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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코리아의 힘! 우렁찬 뱃고동…대우조선 17만톤급 벌크선 명명식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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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코리아의 힘! 우렁찬 뱃고동…대우조선 17만톤급 벌크선 명명식 르포

입력
2007.03.09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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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월 건조 대장정 선주측 인도로 대단원-탯줄 끊듯 황금도끼로 밧줄 끊자 곳곳 탄성

“나는 이 배를‘아난겔 비전(ANANGEL VISION)’으로 명명하나니, 이 배와 승무원 모두에게 신의 축복과 가호가 함께 하소서.”

9일 오전 11시 경남 거제시 아주동 대우조선해양 D-2 안벽. 2년 6개월 동안의 건조기간을 끝낸 그리스 선적 아난겔사의 17만톤급 케이프(CAFÉ)사이즈 대형 벌크선의 명명식이 열렸다. 사람이 이름을 호적에 올리듯 새로 건조된 배를 선적지에 등록하기 위해 이름을 짓는 행사이다.

대우해양조선 남상태 사장의 부인 최종애(52)씨가 뱃머리에 연결된 40여m 길이의 밧줄 끝자락을 도끼로 내려치자 대형 꽃바구니가 터지면서 오색 꽃가루가 나부꼈다. 아기가 태어날 때 탯줄을 끊듯이 선박의 탯줄이 잘려나가는 순간 팡파르와 함께 힘찬 뱃고동이 울려 새 생명의 탄생을 알렸다.

명명식은 2004년 9월 계약에서부터 설계, 강재 절단을 거쳐 진수와 시운전 등 10여단계 공정 중 마지막 단계로, 내빈을 초청해 치르는 유일한 행사다. 양국 국가 연주와 대우조선과 선주측 대표의 축사, 공로패 증정이 이어진 뒤 명명자인 대모(代母ㆍGod Mother) 또는 스폰서(Sponsor)가 배와 연결된 밧줄을 도끼로 자르면 행사는 절정을 이룬다.

오늘은 선주의 부인이나 딸 등이 스폰서를 맡는 관례를 깨고 조선소 대표의 부인인 최씨가 금도끼를 들었다. 대우해양조선측은 “선박의 품질과 납기에 만족한 선주측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최씨에게 명명식 행사의 핵심 역할을 맡겼다”고 말했다. 금도끼는 날과 자루를 합해 21㎝크기로 자루에는 배 이름과 명명식 날짜를 기록해 스폰서에게 기념품으로 제공된다.

밧줄 절단 의식에 이어 스폰서가 배의 중간으로 이동해 작은 보자기에 담긴 샴페인을 줄에 매달아 배에 부딪쳐 깨뜨리는 행사가 이어졌다. 천주교에서 물로 세례를 주는 의식처럼 탄생한 배에 세례를 주는 샴폐인 브레이킹 행사이다.

여성이 스폰서를 된 것은 북유럽 바이킹족이 선박을 새로 건조하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배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의 일환으로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풍습에서 비롯됐다. 19세기 초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명명식에 참석하면서부터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이날 대우조선해양의 명명식장에는 조선소 직원들로 구성된 5인조 미니밴드‘옥포만 브라더스’가 그리스 전통음악과 행진곡 등을 연주, 아난겔사 선주 가족으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조선업계 세계 ‘톱10’중 7개 조선소를 보유한 ‘조선강국’임을 알리는 또 하나의 명명식은 기념 촬영과 선상투어로 이어지면서 1시간여 만에 끝났다.

명명식을 마친 배는 아난겔 비전호는 바로 선주측에 인도돼 오스트레일리아와 중국을 오가는 항해의 깃발을 올렸다.

거제=이동렬기자 dylee@hk.co.kr

■명명식 주역 '스폰서' 변천사

선주나 고위층 부인이 맡는 게 관행…최근엔 노조위원장 부인·女근로자도

선박 명명식의 주인공인 ‘스폰서’는 흔히 ‘도끼부인’으로 불린다. 도끼로 줄을 끊으며 배의 이름을 부르는 역할을 맡은 탓이다. 수년 전까지는 선주측 최고경영자 부인이 주로 맡아왔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배는 대통령이나 장관 부인들이 단골로 등장했다. 국내에선 초대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윤보선 대통령 부인 공덕귀씨, 최규하 대통령 부인 홍 기씨를 제외한 전ㆍ현직 대통령 부인들이 스폰서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엔 ‘고위직 스폰서’ 외에 노조위원장 부인, 여성 근로자, 여성 선장 등으로 다양화 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14일 열린 프랑스 선적 컨테이너선 명명식에서 18년간 선박의 품질보증 업무를 맡아온 여사원에게 스폰서를 맡겼다. 지난해 9월엔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부인이 스폰서로 등장했고, 앞서 1996, 97, 2003년에는 생산직 여사원이 스폰서로 나섰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5월 벨기에 여성 선장이 스폰서를 맡은 것을 비롯, 설계 엔지니어, 선주사 현장 사무실 비서, 용접사 등이 스폰서로 기록됐다. 현대중공업은 2005년 6월 스위스 선적 컨테이너운반선 명명식에 선주사 간부의 두 살 된 딸을 내세웠고, 대우조선도 97년 선주사 기술이사의 딸(4)에게 스폰서를 맡겼다. 반면, 전통적으로 여성의 사회진출을 금기시하는 이슬람권 국가에선 남자들이 스폰서로 나서고 있다.

대우해양조선 홍보의전팀 박종기 이사는 “국내 조선업계가 세계를 석권하면서 명명식과 스폰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조선소나 선주사 모두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어 스폰서 선정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동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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