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총장 "학생 선발 기준·직원수까지 묶어놔…창조적 발전계획 만들기 어려워"
*박 총장 "교육부와 정책 충돌땐 거부 힘들어…예술처럼 '규칙 속 자유' 추구해야"
대학 자율화 논쟁이 뜨겁다. 4년제 대학 총장 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는 최근 신입생 선발권을 100% 대학으로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대학자율화추진위원회를 독자 구성키로 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뒤늦게 비슷한 명칭의 위원회를 만들기로 했지만 대교협은 배제했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상이다.
당사자인 사립대 총장들이 생각하는 대학 자율화는 어떤 것일까. 이른바 ‘문화 총장’으로 불리는 박범훈 중앙대 총장과 권명광 홍익대 총장이 8일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박 총장은 국악계의 거목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과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 연주가를 작곡했다. 권 총장은 시각디자인 분야의 대가다. 숱한 대기업의 이미지 로고를 디자인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탄산음료 디자인도 그의 작품이다. 이들은 “교육부가 간섭을 최소화 해야 대학 자율화가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박범훈 총장 “2001년부터 부총장을 지내면서 ‘드래곤 2018(개교 100주년이 되는 해에 세계 100대 대학으로 진입한다는 중장기발전계획)’을 다 짜 놓았는데 1년도 안 돼 무너졌습니다. 교육부가 대학 교육의 중심을 연구 중심 체제로 바꾸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지요. 일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갑자기 연구중심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하라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요. 교수나 직원 등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 준비할 시간을 주고 진행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예전엔 규모 키우고 백화점 식으로 학과 만들어 신입생 많이 받는 게 잘하는 것이었지요. 장사랑 다를 바 없었어요. 몰고 가려면 시간을 줘야지요. 딱 중위권인 학교는 고통과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고, 어떤 면에서는 더욱 뒤쳐지게 만들었어요.”
권명광 총장 “사실 대학 자율화와 관련해서는 교육부도 신중한 것 같아요. 2004년 대학자율화구조개혁위원회 규정에 따라 대학자율화추진위를 구성했지요. 학생 선발, 교원 인사, 사학 법인 등 분야에 규제완화 과제를 선정해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대는 급변하고 있는데 (교육부는) 순발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에요. 대학을 ‘선 통제, 후 자율’로 규제해 왔지 않습니까. 이젠 ‘선 자율, 후 통제’로 전환해야 할 시기가 됐습니다.”
박범훈 총장 “대학 자율화는 평가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평가는 어떤 면에서 대학 발전에 아주 중요한 수단입니다. 평가가 일반화되다 보니 ‘교수는 나태하다’, ‘대학 사회는 철밥통이다’ 하는 인식들이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대학 발전에 있어선 긍정적으로 중요하게 작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평가 방식이나 방법은 고민해야 합니다. 평가 기관은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평가 자체를 거부한다는 게 아닙니다. 평가 항목 중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그런 부분은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평가가 남발되다 보면 대학종합평가인정제 같은 평가가 인정 받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권명광 총장 “과학기술논문색인지수(SCI)에 지나치게 비중을 두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는 거 아닌가요? 또 예술 분야가 발달한 대학은 학술진흥재단 등이 진행하는 평가 또는 지표 등이 맞지 않습니다. 대학을 평가할 때 그런 점 등을 고려해 달라고 계속 건의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런 평가에서는 불이익을 당하는 측면이 큽니다. 대학은 나름대로 특성이란 걸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경쟁과 평가, 이게 실제 교수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입니다. 대학종합평가제, 사범대학 간 평가, 국가지원 사업, 누리(지방대 육성) 사업, BK(두뇌한국) 21 사업 등 온갖 평가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무슨 무슨 인증제 등 공대나 경영대에서 하는 평가도 많지요. 예산 지원을 그냥 해주는 게 아니라 꼭 평가를 거쳐서 차등 지원합니다. 대학마다 나름의 정책과 설립이념에 따라 특성화 하려고 고민 중인데 이를 교육부 정책으로 규제하고 평가하려 한다면 대학발전을 저해할 뿐입니다.”
박범훈 총장 “입시 이야기를 해보죠. 알게 모르게 대학에서 여러 방안을 모색해 뽑습니다. 우리학교의 경우 수시1학기 제도를 없애고 다양하게 학생을 모집하고 있지요. 사실 예술 분야를 보면 지금의 평준화 교육에서는 예술가가 나올 수 없습니다. 공교육은 장점도 있지만 솔직히 단점이 큽니다. 대학 선발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불신이 여전합니다. 이런 충돌이 있다 보니 제대로 된 전형안을 내놓기 힘듭니다. 교육부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입시를 맞춰 달라고 요구합니다. 대학은 대놓?거부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학생부로만 50%를 뽑고, 나머지는 수학능력 점수에 학생부 점수를 더해서 뽑아요. 노력은 하고 있지만 우수학생을 뽑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결국은 대학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요”
권명광 총장 “학생을 뽑는 데는 대학측의 고민이 더 크다는 점을 교육부가 알아야 합니다. 말이 나온 김에 대학 자율화 부분을 더 언급해야겠습니다. 입시 외에도 학원의 정관 요건을 완화하거나 법인과 학교가 수시로 적정 인원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데도 교육부가 통제합니다. 이런 것들은 행정을 간소화해 자율화하는 게 마땅합니다. 지금 사립학교의 정관을 보면 특정 업무 직원은 몇 명 등으로 묶어 놓은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
박범훈 총장 “대입 3불(본고사ㆍ기여입학제ㆍ고교등급제 금지) 정책 중 기여입학제는 지방대 때문에 어렵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뜩이나 신입생 수가 정원에 미달하는데 돈 있는 사람이면 더 좋은 대학에 아이를 보내려고 하겠지요. 이 문제가 나온 이유는 결국 학교 재정 때문입니다. 세계 100대 대학이니 글로벌 대학이니 다 돈이 문제입니다. 학교가 수익 사업을 해서 재정을 호전시키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대학 자생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든 조치가 필요합니다. 지금 총장들은 가시방석입니다. 발전기금액으로 평가하고 못 걷어오면 무능력하다고 하고, 분위기가 그래요.”
권명광 총장 “미국 하버드대 드류 파우스트 총장이 부임한 후 학교 기부금이 그렇게 늘어난 것 같지는 않아요. 하버드대는 총장을 선임할 때 이른바 ‘최고경영자(CEO)형’은 덜 고려한 것 같아요.”
박범훈 총장 “대학이 자율화를 요구하는 만큼 경쟁력을 키우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총장 되면서 경쟁력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18개 단과대, 16개 대학원 교수들은 하나같이 자기 학과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없어진다는 생각도 없었지요. 잘 크는 단과대는 거름을 줘 바짝 키우고 안 크는 단과대는 토질이 나쁜 건지 정성이 부족한 건지 분석을 하라고 시켰어요. 구성원들이 여럿 있는 곳에서 토론을 시켰지요. 교수들이 똘똘 뭉쳐 단합하는 곳은 잘 큽니다.”
권명광 총장 “자율전공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대학 입학 후 자율적으로 전공을 정하게 하는 것이지요. 특정 단과대쪽으로 확 몰리더군요. 학생들이 많이 온다는 것은 대외적인 지명도 등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지원이 집중되는 것입니다. 모든 대학이 ‘선택과 집중’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박범훈 총장 “교육부에서는 예술 전공 총장들이 자유 분방하니까 불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술처럼 정확한 법칙을 따르는 학문도 없습니다. 철저한 규칙 위에서 자유를 찾는 것이 예술가죠. 어쩌면 우리들이야말로 말 잘 듣는 총장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근본적인 것은 갖춰야 하지만 갑자기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돈 안 준다’ 식으로 나오면 안됩니다. 웬만한 것은 대학에 맡겨야지요.”
권명광 총장 “사실 우리나라가 질적 가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분야가 바로 문화 아닙니까. 디자인을 전공하고 총장에 올랐을 때 대학이란 조직에서 디자인처럼 창조적이고 융통성 있는 경영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과거의 대학과 총장 평가 기준에 비해 요즘 시대에는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마인드가 많이 녹아 들고 있습니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말하는 창조경영, 디자인 경영 등이 다 그런 것입니다.”
정리=김진각기자 kimjg@hk.co.kr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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