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재벌 정책은 냉온탕을 오간 것으로 보인다. 재벌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다가도 경기가 나빠지면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치해 만찬을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벌에 대해 비호감인 것이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경제가 어려운 이 때 정부와 대기업이 합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정부와 대기업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고 어찌 보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대기업의 속성은 정부의 그것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 현 정부의 재벌 정책
<조셉 슘페터> 를 보면 케인즈에 가려 살아 있을 때는 불운했던 그는 기업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다음의 세 가지라고 말한다. 첫째는 사적 제국을 건설하려는 몽상과 의지이며, 둘째는 승리자 의지이며, 셋째로는 창조의 기쁨이라고 한다. 빌 게이츠나 삼성이나 모두 사적 제국을 건설하려는 의지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조셉>
그런데 문제는 정부도 하나의 제국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적 제국이 아니라 공적 제국인 것이다. 공적 제국 안에 사적 제국을 건설하려는 것은 몽상일 수도 의지일 수도 있으나 제국 간의 충돌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게다가 대통령도 재벌 총수도 모두 승리자 의지에 불타는 사람들이다. 정치인은 1등이 아니면 낙선이고 모든 것을 잃는다. 대기업도 1등이 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된다. 이렇게 승리에 불타는 사람들이 구획을 나눠서 자신의 영역에서만 경쟁하면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장 건설을 예로 든다 해도 정부의 입김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다. 승리자가 되려는 의지를 불태운다면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든 창조의 기쁨은 상대적으로 불협화음의 소지가 적어 보인다.
슘페터의 분석이 현실을 도외시한 관념적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슘페터는 자본주의 경제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뉴딜 정책에 대한 혐오는 유명한데,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부인이 루스벨트에게 투표하겠다고 물었더니, "만약 히틀러가 대통령 후보이고 스탈린이 부통령 후보라면 나는 차라리 그쪽에 표를 주겠소"라고 답했다고 한다. 공황과 전쟁을 겪으면서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지만 나는 본질적인 것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즉 자본주의가 기업가의 혁신에 의해 발전하며 혁신에 대한 동기는 위의 세 가지라는 것이다. 기업가의 사적 제국 구축 몽상과 의지는 여전히 작동중이며 승리라는 목표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면 정부와 기업의 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 국회ㆍ법원이 균형 잡아야
한국 사회에서 통합, 대단결, 화합, 일치 등의 가치관은 비판이 허용되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와 대기업이 화합하게 되면 즉각 정경유착이라는 비판이 뒤따를 것이다.
또 지금처럼 정부와 대기업이 대립하면 화해하라고 압력을 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정부와 대기업이 서로의 속성을 인정하고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
균형의 중심에는 법이 있어야 한다. 화해하기 힘든 두 집단이 균형을 이루려면 법이 양쪽을 통제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국회와 법원의 역할이 크다. 국회가 국민 이익을 위해 법을 만들고 법원이 각종 압력에 굴하지 않고 판결한다면 정부와 대기업의 균형은 유지될 것이다.
이 정부의 업적 중 하나는 대기업과의 불화를 처음으로 실제적으로 드러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새로운 균형의 필요성을 일깨워 국회와 법원의 역할을 다시 각인시켰다는 것이다.
탁석산ㆍ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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