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우월적 서양 철학은 보편성 결여 만남 연대 통해 생성되는 서로주체성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유례없는 구현"
재작년 재야에서 강단(전남대 철학과)으로 복귀한 김상봉 교수가 한국 주류 철학의 비주체성을 강하게 비판하며 새로운 철학의 정립을 선언했다.
그가 제시한 개념은 ‘서로주체성’. 이는 서양 철학의 근간인 ‘홀로주체성’에 대비되는 것으로, 오로지 다른 주체와의 만남과 연대를 통해서만 생성되는 정신이다. 일곱 번째로 펴낸 저서 <서로주체성의 이념> (도서출판 길)에서 김 교수는 독창적 철학체계의 밑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서로주체성의>
김 교수는 “역사적 체험이 다른 공동체는 당연히 철학도 달라야 한다”고 단언한다. 철학은 주어진 현실의 지평 위에서 바람직한 미래를 모색하는 자기 인식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강단 철학자들이 서양 사상을 맹종하는 것은 제 몸에 맞는지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옷을 걸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양 철학 자체가 세계의 보편 원리가 될 만한 자질을 못 갖췄다는 점이다. 서양적 주체성은 편협하게도 자신과 동등하거나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를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
김 교수는 이를 홀로주체성 혹은 그리스 신화에 빗대 ‘나르시스적 주체성’이라고 칭하면서 “우월감에 도취된 채 타자를 열등한 비교 대상으로만 여기는 주체성”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정신은 정복과 착취의 역사로 발현된다. 19, 20세기 제국주의 시대나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그 대표적 사례다. 이번 신간의 전반부는 서양 철학사에 면면히 흐르는 나르시시즘을 짚어내는데 할애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이제부터 철학의 체계는 철두철미하게 만남의 이념 위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기우월과 배타성으로 점철된 홀로주체성을 버리고 인류 보편의 가치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철학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김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 속 민중항쟁, 특히 광주민주화운동을 주목한다.
그는 “광주항쟁은 타인의 고통에 목숨을 걸고 응답하려는 용기에 의해 촉발되고 지탱됐다”며 “당시 시민들이 이룩한 절대적 공동체는 세계사를 통틀어도 유례가 없는, 역사적 경험의 정점”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한국적 체험에서 길어올린 철학적 화두가 서로주체성이다. ‘나’라는 주체는 결코 고립된 개별자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만남과 관계맺음을 통해서만 현전한다는 것. ‘나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근대적 주체론에 조종을 울리는 셈이다.
철학에 지역성이 있다면 서로주체성 역시 한국에서만 유효한 것은 아닐까. 김 교수는 고개를 젓는다. 철학은 단순히 주어진 사실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 더 나은 현실을 꿈꾸는 가치지향적 학문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주체들의 만남을 전혀 사유하지 못하는 서양 존재론ㆍ윤리학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며 “서로주체성은 보편 철학이 될 만한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서로주체성 개념을 심화시키는 작업으로 광주항쟁에 대한 철학적 고찰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응답으로서의 역사> 는 5ㆍ18을 다룬 첫 철학 논문으로, 일본 인도 학계에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김 교수는 “일련의 후속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내년엔 단행본으로도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현재 전남대 5ㆍ18연구소가 기획한 ‘5ㆍ18 교과서’ 집필에도 참가하고 있다. 응답으로서의>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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