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연극 히스테리아 연출 및 주연
“몸을 기능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세태가 안타까워요. 걷고 뛰고 섹스하고 보이기 위한 살덩이…. 몸은 그 스스로가 실체이고 우주인데, 그걸 간과하거든요.”
배우 이영란씨가 대표작 <자기만의 방> 을 다시 무대에 올렸다. 18일까지 상명아트홀에서 공연되는 <히스테리아- 이영란의 자기만의 방 2007> 이다. 대한YWCA연합회와 (사)문화미래 이프가 함께 만든 극은 1992년 초연 당시 국내 최초의 본격 여성주의 연극으로 주목 받았던 작품을 오늘의 상황에 맞춰 각색한 것이다. 강연과 퍼포먼스가 함께 어우러지는 강연극 형식은 같지만 주제는 초연 당시 여성의 공간과 돈에서 여성의 ‘몸’으로 옮겨졌다. 히스테리아-> 자기만의>
“남들처럼 연애하고 차이고 차고 결혼하고 이혼하고 갱년기도 거치고 그런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여성의 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고는 해도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에 목매는 현실이 슬프기도 하구요. 생명을 잉태하고 순환시키는 장(場)으로서의 여자 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절실한 때이죠.”
이씨는 예뻐지고 사랑받기 위해 성형으로 몸을 학대하고, 대를 잇고 국가 발전에 헌신한다는 명분아래 난자 재취를 강요 당하는 문화, 성폭력을 당해도 수치와 부담은 피해자의 몫으로 남는 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사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한다.
“웰빙이나 명상수련이 유행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몸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저 ‘섹시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존재하죠. 누군가는 또 그런 소리냐며 진부하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여전히 주체 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는 여성의 몸에 대해서 누군가는 꾸준히 말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내 몫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씨는 무대에서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여성의 정체성과 몸이라는 화두를 던져온 인물이다. 다섯 살 때부터 춤을 췄고 태껸과 수벽치기, 요가, 명상수련 등을 수련했다. <안티성폭력 페스티벌> 이나 <대한민국 여성축제> 의 연출가로서도 이름을 날렸고 영화 <꽃잎> <세라진> 등에서는 희생적인 어머니나 성매매 여성으로 출연했다. 전사의 이미지가 강한 것은 이런 이력에서 나온다. 세라진> 꽃잎> 대한민국> 안티성폭력>
“여성주의에 천착하게 된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꽤 받아요. 사실을 말하면 없습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공주처럼 자란 7남매중 막내딸이었는데 오히려 그게 문제였어요.
집안에서 워낙 떠받들어 주는 분위기 였기 때문에 한번도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거나 할 말을 못하거나 한 기억이 없거든요. 제 할 말 다하고 자라 ‘건방지다’며 왕따도 많이 당했는데 그런 기질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참지 못하는 성질을 만든 것인지 모르죠.”
할 말 다하고 하고 싶은 것은 하고야 마는 대단한 고집은 연극과의 인연을 만들어냈다. 대학(이화여대 무용학과) 재학시절 교내서 공연된 록뮤지컬 <가스펠> 에 출연하면서 입다물고 몸만 움직이는 춤의 세계와 달리 ‘말하고 노래하고 관객의 열광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연극의 매력에 푹 빠진 여대생은 졸업후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1980년 무작정 뉴욕으로 날아가 교포들이 결성한 뉴욕극단의 공연장 안내요원으로 일하면서 평생의 업에 입문했다. 가스펠>
“그때 내 손에 달랑 들었던 것이 뉴욕극단에서 창단연극을 올린다는 1단짜리 신문기사였어요. 무작정 찾아간거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내가 거기 있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재공연 때부터는 역할을 하나 따내서 10년여 뉴욕시대를 열게 된거죠.”
이씨는 이번 무대가 끝나면 다음에는 몸의 우주성에 대한 성찰을 담은 <자기만의 방> 세번째 이야기를 풀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갱년기를 지나오면서 천착하기 시작한 ‘나이 들기와 죽음’이라는 주제가 다음 무대의 화두가 될 것이다. 자기만의>
“6년 전에 ‘몸에 대한 학대이지’ 싶어서 오랫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 2년 전엔 술도 끊었어요. 몸이 참 선생이지 싶은 게 내 몸이 갱년기를 겪으니까 노화와 죽음이라는 주제가 전보다 더 강렬하게 받아들여지더군요. 창의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있는 중입니다.”
이성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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