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기다렸던 일이라 그런지 아직까지 실감을 못하겠어요.”
지난 7일 한국여자야구연맹(KWBA) 창단식에서 선수대표로 헌장낭독을 한 안향미(26)는 여전히 꿈을 꾸는 듯 했다. 그녀는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다. 한국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였고, 덕수정보고 유니폼을 입고 지난 99년 배명고와의 대통령배 준결승전에서 공식경기 데뷔전도 치렀다. 또 2004년엔 국내 첫 여자야구단 ‘비밀리에’도 창단했다.
무슨 거창한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야구가 좋아서다. 청파초등학교 5학년 때 남동생을 따라 드래곤즈 리틀야구팀을 다니면서 야구의 매력에 푹 빠진 뒤 아직도 헤어나오질 못해서다.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만의 야구계에서 ‘홍일점’이었던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중학교에서 선수 등록을 하려 할 때, 고교를 졸업한 뒤 대학과 프로에서 자신을 야구선수로 받아주지 않았을 때, 비자를 받지 못해 미국 진출 기회를 놓쳤을 때도 “여자가 무슨 야구냐”는 세상의 차가운 시선과 맞서 싸워야 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했다. “여자니까 너는 이 정도만 해도 된다”는 주위의 배려는 마치 시험과도 같았다. 그녀는 ‘여자이기 때문에’ 뛰고 또 뛰었다. 고등학교에 입학 뒤에는 ‘여자’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악바리 근성으로 똑 같이 훈련을 했다. 처음엔 곱지 않던 팀 동료들의 시선들도 점차 바뀌어갔고, 이제 누구보다도 든든한 그녀의 후원자가 됐다.
지금은 세포분열중
2004년 7월 여자야구 월드시리즈. 국내 최초의 여자야구팀 ‘비밀리에’는 창단 3개월 만에 국제무대에 나섰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0-53(일본), 0-27(캐나다), 6-16(홍콩). 하지만 그들의 지치지 않는 야구 열정은 음지에 있던 ‘야구소녀’들을 불러 들였고, 3년 만에 여자 야구팀은 16개팀으로 늘어났다.
한때는 국적을 바꿀까 생각까지 했다. 일본에서 함께 뛰던 팀 동료들이 국제무대로 진출하는 모습이 마냥 부러워서다. 하지만 이제 그토록 기다리던 문이 열렸다. 일본처럼 사회인야구 100여개팀, 대학 30여개팀으로 늘어나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한국 대표로 뛰고 싶다”던 그는 한 마디 덧붙인다. “이제 최소한 ‘여자가 무슨 야구냐’ 그런 얘기 듣지는 않겠죠?” 안향미는 현재 ‘비밀리에’에서 이름을 바꾼 ‘선라이즈’의 감독을 맡고 있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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