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간다고 밤잠 설친 영희…경비 걱정에 밤잠 설친 엄마영유아 출국 3년새 50%↑…작년에만 15만명 해외로
“여보, 우리 아이도 해외여행 한 번 보내야겠어요.”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41) 과장은 최근 아내의 말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섯 살 아들이 “유치원 친구가 이번 겨울에 유럽에 다녀왔다고 자랑하는데 우리는 안가냐”며 보챘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가 될까 걱정스러우면서도,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교육적으로 바람직할지 고민이 됐다. 1인당 300만원 가까이 하는 여행비도 부담스러웠다. 일가족 3명이 1주일 일정으로 유럽을 다녀오려면 1,000만원 정도는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주부 최모(30)씨는 이달 초부터 백화점 아르바이트에 나섰다. 올 여름 중국으로 가족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가 며칠 전 “친구들이 해외여행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나만 끼지 못해 속상하다”는 말을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해외여행 바람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까지 불고 있다. 방학이면 어학 및 현장 학습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유치원생 자녀를 둔 부모들까지 ‘해외여행 스트레스’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
최근 서울 용산구 이촌동으로 이사한 주부 김모(38)씨는 “유치원 선생님과 얘기해보니 방학 때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않는 아이들이 드물었다”며 “어떤 아이는 일년에 서너 번씩 갔다 온다는 말을 듣고는 일년에 한 번은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이나 목동에 있는 일부 유명 유치원에선 현장 학습 명목으로 단체 해외여행을 가는 곳도 있다. 유치원생 외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하나뿐인 자식이 해외여행을 다녀오지 못해 유치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타의반 자의반으로 단체 해외여행을 보냈다”고 떨떠름해 했다.
실제 정부 통계를 보면 최근 영ㆍ유아 해외여행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출입국관리사무소와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5세 이하 영ㆍ유아 출국자 수가 최근 3년간 50% 급증했다. 2003년 10만9,225명이던 5세 이하 해외출국자가 2005년엔 13만9,969명으로 늘었으며, 작년엔 15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잠정 파악됐다. 10세 이하 어린이들의 해외출국자 역시 2005년 37만5,000여명에서 지난해 42만5,000여명으로 증가했다.
여행사들은 영ㆍ유아 해외여행이 늘어나자 관련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고객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클럽 메드는 최근 만 2~10세 자녀를 둔 부모 대상의 가족여행 프로그램 ‘키즈 클럽’을 선보였다. 하지만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식의 맹목적인 해외여행에 대해선 우려의 소리가 만만치 않다.
하은혜 숙명여대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영ㆍ유아들과 현장교육 명목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장시간 비행에 따른 피곤함 탓에 아이가 부모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아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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