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을 해서 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4년이나 되고 보니 요즘 학교는 어떨까 하는 기대에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 온 학교의 모습은 한 순간에 내 기대를 무너뜨렸다.
여전히 형편없는 화장실과 앉기에도 불편한 책걸상, 추운 교실, 좁은 운동장, 초라한 도서관…. 그저 도시락을 올려놓은 조개탄 난로가 없어졌다는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학교를 대하면서 한숨만 나왔다.
● 조개탄난로 말고는 그대로인 중학교
이런 실정은 비단 특정 지역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냉방시설이 부족한 교실의 비율이 서울 31%, 부산 28%를 비롯하여 주요 대도시의 경우 40~53%에 이른다고 한다.
지역별로도 8개 도 지역 중 6개 지역 교실의 47~55%가 냉방시설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게다가 전국 시도 교육청의 빚이 2조원을 넘어 학교마다 2억원 이상씩 빚을 진 꼴이라고 하니 가난한 학교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대학에 재직하다 보니 대학 입학시험 문제까지 일일이 관여하는 교육부의 정책을 대하면서 교육부가 자질구레한 일까지 간섭을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다.
대학의 일에는 그렇게까지 관여하는 교육부가 정작 세심한 관심과 관리를 요하는 초ㆍ중ㆍ고등학교에 대해서는 왜 그토록 방관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교육부가 예산을 줄 만큼 주었는데 학교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예산 자체를 잘못 책정하고 있는 것인지 시시비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교육부는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부형의 마음을 무조건 탓하기 전에 공교육이 살아날 수 있도록 당장 나서야 한다. 공부의 내용만이 문제였던가. 학원만도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이 무슨 즐거움으로 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인가.
안 그래도 공부에 지친 아이들에게 제대로 뛸 수 있는 운동시설 하나는 마련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좁은 땅에 살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그냥 받아들이라고 하기에는 우리는 이미 너무나 발전된 변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제도가 사람을 못 따라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우리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두고 한 말인 듯싶다. 우리 아이들의 체격 조건은 서구 학생들 못지않은데 책상과 걸상은 여전히 작다. 학교 급식은 식중독만 안 걸려도 다행인 수준이다.
우리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번씩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소통하는 IT세대인데 학교 시설은 여전히 개발시대에 있다. 학생들에게는 꿈을 가지라고 하고, 세계와 경쟁하라고 하면서 변변한 도서관 하나 없이 여전히 예전과 다를 바 없는 환경에서 공부를 시키고 있다.
이러한 교육 현실이야말로 하향 평준화의 대표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교육부 정책은 대학으로부터는 자율성을 빼앗고 초ㆍ중ㆍ고등교육은 과거 속에 영구히 정박시켜 놓은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따져 봐야 한다.
● 간섭만 하는 교육부, 학교현실을 봐야
정치가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 것처럼 교육은 학생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번에 발표된 교육과정 개편 역시 교사들의 이해에 의한 타협물로 학생을 무시한 결정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한 교원 평가는 교사들의 반대로 정체 상태다. 심지어 현재 지지율이 제일 높다는 한 대통령 후보는 운하를 건설하겠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돈을 교육 환경 개선에 투자하겠다는 말은 없다.
국가 발전은 한 순간의 일이 아니다. 현재의 청소년들이 10년 안에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된다. 이 시대에 무엇이 우선적인 문제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운하를 뚫어도 미래 국민이 경쟁력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원정 출산을 나가는 산모를 탓하기 전에, 또 조기 유학을 보내는 학부형을 비난하기 전에 우리 교육 환경을 최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곽진영ㆍ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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