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문득 독설적 어투 떠오르는건 어쩔 수 없어-"영화와 달리 나는 바뀌어"… '엘 토포' 등 맞춰 방한
매너 좋은 노신사. 첫 인상은 다소 의외였다. 신성모독을 성스러운 계율로 여기고 화면 가득 피가 흘러 넘치는 그의 영화와는 딴판이었다. 세월의 탓일까.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78) 감독은 ‘못 말리는 괴짜’의 컬트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부정적인 예술에 이제 지쳤다. 예술은 자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초현실적 시각과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에 갇힌 이단아. 그에 대한 이런 규정은 이제 시효가 끝난 모양이다. 6일 만난 그는 “영화는 바뀌지 않았지만 내가 바뀌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엘 토포> (1970년)와 <홀리 마운틴> (1973년)의 뒤늦은 국내 개봉(15일 필름포럼, 씨네큐브)에 맞춰 방한한 것에 대해 “나는 현재의 감독이 아니라, 먼 과거의 감독으로 온 것”이라고도 했다. 홀리> 엘>
어쩌면 처음부터 그의 영화는 파괴와 해체보다 구도(求道)에 방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처음에는 아무도 이해를 못해서 미래의 관객을 상대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흐름을 거꾸로 타고 오르는 연어’에 비유했다.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을 이해 못하는 세상의 불편한 시선이 그를 더 ‘미치광이’의 모습으로 몰고 간 것은 아닐까.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처음 영화를 찍을 때는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안다”며 “인간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고, 하루 하루가 보석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엔 로봇이 돼 버린 인간, 시멘트 무덤으로 변해버린 도시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 있었다. 과거 “히피들이 마약으로부터 얻는 것을 나는 영화로부터 얻는다”고 말했던 그가 이제 “영화는 마약이 아니라, 의식을 깨우는 도구”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섹스와 폭력, 종교적 메타포가 부조리하게 뒤섞인 그의 영화문법은 버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종교의 의미에 대한 질문에 “종교는 섹스나 정치처럼 인생에 꼭 있는 존재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의 강간이 낳은 선물”이라는 등 특유의 독설적 화법도 숨기지 않았다. 신성모독 등에 대한 연이은 질문에도 “그게 내 스타일”이라고 짧게 정리했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자주 본다”며 “다양한 주제와 기법을 상업적으로 살려내는 힘이 놀랍다”며 한국영화를 극찬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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