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낮춰 남을 높이는 선생님… 닮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후배 이명랑입니다. 잘 계시느냐고 구태여 안부를 묻지 않아도 어디선가 늘 맑게 웃고 계실 것 같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의 신작소설 <낯선 사람들> 을 읽으며 내내 선생님을 떠올려야했습니다. 귀엽게 쌍꺼풀이 진 커다란 눈, 웃으면 그럴 수 없이 즐겁다는 듯이 활짝 벌어지는 입. 게다가 선생님의 웃음소리는 더없이 명랑해서 곁에서 듣고 있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즐겁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지요. 낯선>
‘선생님의 웃음 뒤에는 이런 그늘이 숨어있었구나!’ <낯선 사람들> 의 주인공인 성연의 모습에서 저는 자꾸만 선생님의 그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웃는 모습이 너무도 환해서 선생님의 내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이 소설의 진지함이 제게는 더욱 더 아프게 전해져왔는가 봅니다. 낯선>
이 소설의 주인공인 성연은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가족사를 파헤쳐가는 내내 괴로워하지요.
아버지를 죽인 형, 그러나 그 사실을 믿지 못하는 성연, 성연은 형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과거를 추적하지만 결국 그가 밝혀낸 사실은 아버지와 형이 뿌린 죄악의 씨앗이었습니다. 모두가 가해자이며 모두가 피해자인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는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의 그 환한 웃음이 때로 햇살을 도려내는 빗줄기처럼 혹은 안으로 삼키는 울음처럼 느껴지던 까닭을요.
어느 날 선생님은 제 옆에 앉아 계셨지요.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길이었기에 어느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 옆에 앉아 그 동그란 눈으로 잡지책을 들여다보던 선생님의 모습은 눈에 선합니다. 잡지를 읽다 말고 뜬금없이 선생님은 제게 말씀하셨지요. “나이가 들수록 실없어져야 된다. 허튼 소리만 해야 돼.”
저는 무슨 말인지 몰라 선생님의 그 말씀을 두고두고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 뒤로 어떤 자리에서든지 선생님을 유심히 보게 되었구요. 선생님은 정말 그리 하셨습니다.
그럴 듯한 말로 권위를 내세우기보다는 유머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높이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뵐 때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저 사람을 닮고 싶다…’
선생님께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나는 나를 높이 세우려고만 하지 않았는가? 진심으로 타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나를 낮춘 적이 있었던가?
선생님! 선생님께서 늘 그 자리에, 곁에 있어주시는 것만으로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이 후배는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디 앞으로도 건강하게 저희들 곁에 오래 오래 있어주세요.
2007년 2월 18일 새해 첫 날, 이명랑 올림
■김다은의 우체통-2005년 베트남 여행길 함께 해
이명랑 씨는 2005년도에 작가들과 함께 베트남 등지를 여행했다. 빡빡한 일정에 스트레스가 쌓일 즈음 툭툭, 농담을 던져 좌중을 웃기고 분위기를 되살린 사람이 김영현 씨였다. “진지함보다 웃음이, 목적보다 과정이 더 빛나던 순간들”이었다고.
농담하고 웃을 줄 아는 영혼! 문득, 밀란 쿤데라의 <농담> 과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이 떠올랐다. <농담> 은 농담 한 마디에 한 인간의 삶이 유린당하는 과정을, <장미의 이름> 은 수도원의 신성함을 깨는 웃음을 막기 위한 연쇄살인 과정을 보여준다. 농담과 웃음은 억압적이고 무미건조한 세계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장미의> 농담> 장미의> 농담>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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