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코트와 겨울 외투를 차례로 다시 꺼내 입었다.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를 지나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에 영하 10도 추위가 왔으니, 과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해마다 되풀이 겪는 꽃샘추위에 늘 호들갑스러운 세상이 얄팍하지만, 자연이 부리는 조화에 짐짓 놀라워 하는 것이 도리일 수도 있다. 다만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지방 기후에 맞춘 24절기 계절 구분이 우리 기후 및 생태계와 갈수록 동떨어진다는 지적을 새삼 떠올린다.
■ 그러나 봄이 봄답지 않은 것이 순전히 자연의 변덕이나 농경시대의 24절기 구분 탓 일까 싶다. 엉뚱한 듯 하지만 우리가 봄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서양에서 봄의 공식 시점(始點)은 춘분(春分)이다. 올해는 3월21일이니 보름이나 남았다.
새싹이 트고 꽃망울이 부푸는 계절의 변화도 지역마다 차이가 크다. 먼 남쪽이나 베란다에 꽃이 핀다고 겨울이 끝난 것은 아니다. 조류학자에게는 강남 간 제비가 돌아와야 봄이다. 이를테면 백화점 '봄 옷 잔치'에 현혹돼 겨울 옷을 서둘러 치운 성급함이 계절을 혼동하는 근본인 셈이다. 그래서 세상 만사가 사람 마음과 생각에 달렸다.
■ '핵 겨울'에 움츠렸던 한반도 정세에도 갑자기 봄이 다가온 듯하다. 북핵 6자 합의에 이어 북ㆍ미가 관계 정상화를 협상하고, 남북도 중단된 교류협력을 재개한다.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도 정상회담이든 뭐든 봄을 앞당기려는 특사외교라고 일러 망발될 건 없다. 한반도 정세에 봄기운이 도는 것 자체는 반길 일이다.
그러나 아직 멀리 있는 봄을 대선 정략을 위해 억지로 재촉하거나, 반대로 오는 봄을 애써 막으려 하는 것은 모두 잘못이다. 겨울인지 봄인지 국민을 헷갈리게 하고, 변화에 옳게 대처하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 '한반도의 봄'은 미국 언론이 앞장서 거론하고 있다. 대북 압박정책을 고집한 부시 행정부가 북핵 해결을 스스로 막은 잘못을 깨달아 실용외교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가 어디에 이를지 두고 볼 일이지만, 미국을 추종하던 우리 보수세력이 "핵 폐기 없는 북ㆍ미 관계 정상화는 안 된다"고 항의하는 것은 우습다.
그러나 이제 정상회담만 하면 온통 화창한 봄날이 열릴 것처럼 말하는 것도 헛된 소리다. 오히려 한반도의 겨울과 봄 사이는 유난히 변덕스럽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봄을 기다리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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