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법무부장관이 당초 정부의 상법개정안에서 도입키로 했던 이중대표소송제를 삭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제도는 비상장 자회사의 위법 행위에 대해 모회사 주주가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게 한 것으로, 전임 천정배 법무장관에 의해 추진돼 왔다.
천 장관이 지난해 5월 재계에 적지 않은 파급을 미칠 정책을 국내가 아닌 미국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밝힌 것은 그만큼 정책의 당위성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기 때문이다.
실제 비상장 회사인 삼성에버랜드를 이용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 등이 문제로 지적되면서 국민들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도 도입의 공감대는 그 어느 때보다 컸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도 채 안 돼 김성호 장관 체제의 법무부는 스스로 입장을 뒤집었다. 사실 재계의 반발은 누구나 처음부터 예상하던 변수였다. 법무부는 1년 동안 상법개정위원회에서 재계 등 각계 의견을 수렴해 만든 법안이 지난해 10월 입법 예고된 이후에도 줄곧 재계의 반대에 끌려 다니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장관이 바뀌면 정책이 바뀔 수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법안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김 장관은 법무부가 재계와의 기싸움에서 밀린 원인을 본인의 친기업 행보와 연관시켜 보는 시선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는 사석에서 친기업 행보가 재벌 편들기는 아니라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지난 1년간 법무부의 주요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이 번복된 것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적어도 5일 열린우리당과의 정책간담회에서처럼 부처 협의 미비를 제도 철회의 이유로 꼽는 것으론 부족하다. '법무부는 시장경제의 공정한 룰을 만들고 지키는 가장 중요한 경제부처'임을 자임하던 그 기백은 어디로 갔는가.
사회부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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