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교수님들의 눈높이
알림

[편집국에서] 교수님들의 눈높이

입력
2007.03.06 23:37
0 0

토론이 끝나고 저녁식사가 시작되자 후보가 나타나 자리를 함께 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 후보는 돌아갔고, 모임을 주선한 교수가 거마비 봉투를 돌리기 시작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교수인 나의 지인(知人)과 유력한 대선주자인 A씨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기적인 회의 참석자가 된 그는 이제 A씨를 위한 정책 보고서를 쓰고 있다. 대선주자를 돕는 학자들의 집단이, 반경이 늘어나는 동심원처럼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찍 바람이 분 대구에선 A씨 캠프에 이름을 올린 교수의 수가 200명이 넘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대선주자와 줄을 대고 돕는 교수들을 좋지 않은 의미로 폴리페서(Poli-fessorㆍ정치교수ㆍPolitics 와 Professor의 합성어)라고 부른다는데, 이는 잘못된 말 쓰임이다. 정치인과 학자의 만남, 공직선거 후보와 대학교수의 결합은 매우 바람직하다고 본다. 학자가 자신의 학문을 현실에 적용해보고 싶은 욕망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설사 교수직을 고위직에 오르기 위한 등용문으로 여겼다고 하더라도, 입신을 위해 학문을 왜곡한 게 아니라면 비난할 일이 아니다. 도리어 정치적 중립의무가 있는 국가공무원이나, 편향된 글을 쓰던 언론인이 캠프에 몸을 던지는 것이 더 부적절해 보인다.

그런데도 선거에 참여하는 교수들의 모습을 보며 걱정이 생긴다. 그런 행위 자체가 부도덕하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학계의 전문가들이 과연 공직사회를 알고, 정책을 알고, 현실을 아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다.

역대 정부에서 학자 출신 고위공직자는 관료에게 사로잡힌 포로이거나, 또는 좌충우돌하는 돈키호테, 그런 유형이 많았다. 조직에 뿌리를 박고 업적을 남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문민정부 조각 때 얘기다.

한 국장급 간부가 "자료를 얻으려고 내 방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장관으로 왔어"라고 투덜댔다. 그 장관은 임기 대부분을 "협상전략을 강의하듯 상대에게 가르쳐 준다"는 등 비아냥을 내부에서 들으며 겉돌았다.

참여 정부의 학자들은 공직사회의 규율이 학계보다 때로 더 엄격하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부총리 후보가 학자시절 논문표절을 놓고 "학계 관행"이라고 강변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도대체 그런 학계 관행을 옮기겠다는 뜻인지. 오해를 부를 만한 말을 하고, 듣는 쪽에서 잘못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관료들이 꼽는 학자출신의 특징이다. 이번에도 임기초반에 대거 정부에 진출했다가 후반에 자리를 관료들에게 내주는 패턴은 되풀이되고 있다.

선거에 관여한 수가 많은 만큼, 다음 정부에 참여하는 학계 인사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공직으로 향하는 학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직위의 평가절하, 다시 말해 정책을 집행하는 자리로의 진출이다.

교수 출신 국장, 또는 과장을 보고 싶다는 얘기다. 정부와 학계의 교류가 잦은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80년대 중반 합참의장 자문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장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소프트 파워 개념을 만든 조지프 나이 케네디스쿨 학장은 국방부 차관보를 맡기 전 NSC의 과장을 지냈다. 퇴임하면서 "짧은 기간이지만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학자 출신 공직자는 이제 사절하고 싶다. 비싼 수업료를 모두 국민이 내지 않았는가.

유승우 기획취재팀장 swyo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