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감이 못 된다. 거론하지 말고, 여론조사에서도 빼 달라."(2006년 9월) "정치를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12월 20일) "충청도에는 나라가 어려울 때 일어난 의인과 지사가 많다. 고향을 위해 할 일이 있다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12월 26일) "불이 꺼져 가니까 나를 불쏘시개로 이용하려 한다.
대통령에 관심이 없으며 후보로 나설 생각이 없다."(2007년 1월 3일) "링 위에 사람이 없으니…. 여러 군데서 돕겠다는 사람들이 있긴 한데…."(2월 17일) "이것이 바로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라고 아직 말할 입장이 아니며 마음을 정하지도 못했다.
"(2월 23일)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지 생각하고 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정치를 절대 안 한다고 할 수 있느냐."(2월 25일)
● 한국사회 지배하는 7가지 신드롬
서울대 총장을 지낸 정운찬 교수의 고민을 보여주는 발언들이다. 정 교수는 이미 홀몸이 아니다. 주변에서 그를 가만 놔두질 않는다. 정운찬이라는 이름은 어느덧 사회적 현상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심층을 파고 들자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7가지 '신드롬'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첫째 '간판 신드롬'이다. 한국은 '서울대 공화국'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인물에겐 공화국 수장의 자격이 저절로 주어진다. 상고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은 '안티 서울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때 참여정부 장관급 인사중 70%, 13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가운데 12명이 서울대 출신이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둘째 '새것 신드롬'이다. 한국인은 물건이건 사람이건 새것이라면 환장을 한다. 거의 종교 수준이다. 정치 전문성? 그런 건 필요없다. 정치판에 오래 몸 담은 사람은 그곳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셋째 '경제 신드롬'이다. 민생고와 더불어 늘 경제와 무관한 주제로만 따지기 좋아하는 법률가 출신 대통령에 질린 한국인은 경제 전문가에게 프리미엄을 주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넷째 '인맥 신드롬'이다. 간판 좋고 신선하고 경제를 안다고 해서 무조건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한국은 '인맥 공화국'이기 때문에, 반드시 마당발이어야 한다. 정작 본인은 뜻이 없어도 마당발 동지들이 그냥 놔두질 않는다.
다섯째 '지역 신드롬'이다. 여권은 호남을 거저 먹고 들어가는 '단일 몰표'로 간주한다. 충청 출신 후보면 충청ㆍ호남을 다 먹는다는 계산이다. 노 대통령이 '영남 후보'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바로 그 셈법이다.
여섯째 '바람 신드롬'이다. 평소 실력이 없는 여권은 바람을 일으킬 '불쏘시개'나 '치어리더'를 필요로 한다. 한국인들은 '욱' 하는 기질에 의해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지 안 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불쏘시개'와 '치어리더'의 고민도 깊어간다.
● 왜 '전 서울대 총장' 일까
일곱째 '서열 신드롬'이다. 한국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서열 교육을 받고 자란 탓에, "호랑이와 상어가 싸우면 누가 이겨?"라는 식의 질문을 하는 걸 좋아한다. 정치와 교육은 다른 게 아니라 정치가 교육보다 높다고 본다. 그래서 총장 다음엔 대통령을 꿈꾸는 게 아주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언론이 대선 관련 보도를 하면서 이명박을 '전 서울시장', 박근혜를 '전 한나라당 대표'라고 부르는 건 동종업계 호칭인 만큼 눈 감아 줄 수 있지만, 정운찬을 자꾸 '전 서울대 총장'으로 부르는 건 이상하다. 업종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선 서열로 보아 가장 높은 직책을 죽을 때까지 불러준다. 정 교수 자신은 그런 서열의식이 없으리라 믿지만, 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정 교수의 행운과 건투를 빈다. 웃자고 쓴 글인 만큼, 관계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바란다.
강준만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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