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기반 보수우익 달래려 '립서비스'
*"美는 내편" 판단 美의회 분위기도 무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5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미 하원의 결의안이 채택된다고 하더라도 일본정부는 사죄하지 않겠다”고 한 발언은 현재의 미일관계를 고려할 때 매우 이례적인 것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1일에도 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담화’를 사실상 부정하는 발언을 해 국내외적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야스쿠니(靖國)신사참배 문제 등 일본의 과거사문제에 대해 철저하게 ‘애매한 전략’을 취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이처럼 강공으로 전환한 배경은 몇 가지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자신의 지지 기반인 보수.우익 세력에 대한 ‘립 서비스’의 성격이 짙다는 것이다. 취임 이후 표면적으로는 온건.현실적인 노선을 추구해 온 그는 그 동안 측근을 통해 속마음을 털어놓은 방식으로 ‘아베는 변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그러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등 최근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직접 나서서 지지 세력을 다독이게 된 것이다.
아베 총리가 최근 국회 질의 응답에서 한층 공세적으로 임하는 등 ‘도련님 정치가’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이 같은 전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문제에 대한 아베 총리의 애매한 전략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지적도 많다. 어찌 보면 말장난 비슷한 아베 총리의 ‘애매한 전략’은 특이한 ‘일본식 정치’의 전형이기 때문에 국제 사회의 이해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종군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증명할만한 증거는 없다는 주장이 단적인 예이다.
아베 총리의 측근들이 주도하는 자민당의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모임’은 일본정부에 고노담화를 수정하라는 제안을 하려다가 미국 의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연기하는 해프닝을 펼치기도 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일련의 강경 발언은 부정확한 상황판단을 기초로 한 ‘실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날 예산위원회에서 “전후 60년 일본은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길을 걸어 국제 사회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고 강조한 아베 총리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 든 민주당의 오가와 도시오(小川敏夫) 의원에게 “당신은 이 같은 일본의 발걸음을 폄하하고 있다”는 폭언도 불사해 위원회가 잠시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또한 아베 총리가 최대의 동맹국인 미국의 의회에 대해 똑 부러지게 거부 선언을 한 것은 결의안 채택 작업이 “미 하원의 일부 의원들의 움직임”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 정부와 다수의 의원들이 전적으로 일본편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 정부의 이 같은 판단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변화한 미국 정계의 분위기를 애써 무시하고 있는 듯한 일본 정부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미국의 정권 교체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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