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활동·자격증 全無…처음엔 막막… 패배감 털고 이력서 채우기 시작했죠"
사회생활의 출발점인 취업 전선에서 한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만회하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경우가 고시에서 쓴 잔을 마신 뒤 뒤늦게 취업전쟁에 뛰어든 늦깎이 구직자들이다. 이들에게 취업 시장은 고시보다 더 처참한 패자부활전이다. 늦게라도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낙오자가 뒤기 십상이다.
메리츠종합금융 신입사원 김훈경(31)씨도 얼마 전까지는 패배자였다. 2001년 군 제대 이후 공인회계사 공부를 시작한 김씨는 2년 만에 1차를 합격할 때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하지만 이듬해 2차 시험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재도전한 1차 시험에서 경영학 과락 대란의 희생양이 됐다. 계속된 불운의 정절은 2006년 1차 시험 때였다. 3교시 때 B형 문항을 받고도 A형으로 잘못 기재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1,2교시 모두 A형 답안지를 받았던 터라 별 생각 없이 A형으로 기재한 게 화근이었다. 결국 그는 그날로 공인회계사 시험에 종지부를 찍었다. “제 능력이 부족한 점도 있었겠지만 공인회계사는 저와 연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련을 버리니깐 맘은 편해지더군요”
하지만 이후 엄습하는 패배감은 늪과도 같았다. 무력감 때문에 허송 세월하기를 수개월. 누구보다 재담이 뛰어나고 활달했지만 점차 사람 만나기가 싫어졌다. 가끔씩 만나는 친구들과 선배들이 건네는 명함을 볼 때마다 부러움 섞인 한숨이 나왔다.
이대론 무너질 순 없었다. 나이도 취업 한계선인 서른 살이라 자칫 고시 낙방생에서 인생 낙오자로 전락할 수 있는 위기의 시기였다. 그는 마음을 다 잡고 평소 관심이 많았던 증권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분야는 회계사 공부와는 다른 분야인 투자은행(Investment Bank)으로 잡았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맘이 ‘역시나’로 바뀌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증권사 20여 곳에 취업원서를 냈지만 모두 서류에서 탈락한 것. 그나마 한 회사에서 서류합격 발표 전날 ‘지원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일 할 의사가 없느냐’고 물어온 게 전부였다.
고시 공부에 몰두하느라 학점이 3점대(4.5만점) 수준이었고, 취업 필수 코스인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가지 않은 게 문제였다. 인턴사원 경험이나 봉사활동 등도 전무했다.
여기에 증권사 지원자면 다들 갖고 있는 ‘금융 3종 세트’(금융자산관리사, 투자상담사, 선물거래상담사) 자격도 없어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한 경쟁자를 이긴다는 게 불가능했다. “이력서를 꽉 채워도 모자랄 판에 내놓을 게 학교와 학점뿐이었으니...고시가 독약이었던 셈이죠.”
그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우선 서류전형 통과를 위해서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고진감래라고 원서를 낸 메리츠종합금융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통보가 날라왔다. 그는 실무진과 임원면접에서 일에 대한 의욕과 열정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고시를 하다 취업으로 발길을 돌린 구직자들은 대개 고시에 미련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일에 대한 의욕과 경력관리에 대한 향후 계획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선후배들의 명함을 볼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솔직히 말했습니다. 고시에 대한 꿈을 접고 어엿한 직장인이 돼 일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합격통보 당일 오전 그는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회사에서 지원 분야가 아닌 회계쪽에서 일해 볼 의향이 없냐는 것이었다. 잠시 고민했지만 한차례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다 일단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회사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는 “능력을 검증 받을 수 있는 객관적 지표도 없는데 그저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투자은행 사업분야만을 고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 씨는 입사 이후 빠른 회사 적응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선배들과는 업무를 넘어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자잘한 업무도 성의를 다해 충실히 해 나갔다.
선배들의 독려와 칭찬은 더할 수 없는 힘이었다. 5년간의 고시공부와 패배감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김씨는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며 “비록 패자 부활전을 거쳤지만 이제는 인생의 승리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고시 실패 후 취업전략 5계명
1.자신감을 회복하라=취업시장에서 패배감은 독약이다.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가벼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또 취업 및 진로에 대한 확실한 목표 의식을 정해야 한다.
2.고시에 대한 미련을 버려라=고시 합격 이후를 가정하고 지금의 현실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3.취업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달하라=인사 담당자들은 지원자가 입사 후 다시 고시공부에 관심을 갖고 조기 퇴사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때문에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통해 조기 퇴사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4.고시 분야와 지원 분야를 연결시켜라=고시 공부로 인한 공백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어필해야 한다. 고시 경험이 지원 분야에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 연결시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5.나이차이를 극복하라=고시 실패 취업 희망자의 경우 이미 입사한 선배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경우가 많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자신이 매우 유연한 사람임을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료제공: 커리어
안형영 기자 promethe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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