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간단히 정의한다면 무엇일까? 가장 기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여야 한다. 또한 삶의 질을 제고해 구성원들의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 구성원의 의사결정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집단적 의사결정은 다수결 원칙을 채택한다. 곧 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차이 즉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그 출발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 이 대법원장 체제 하 잇단 사건들
민주주의 하에서 사법부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는 각 개인의 권리를 우선적 가치로 인정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개인 사이의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사회 속에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문제점을 법률의 해석을 통해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사법부의 구성원인 판사들도 사회 구성원이면서, 또한 문제점을 분석하여 판단해야 하는 2중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판사라는 직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지식과 윤리관, 나름대로의 인생관 등이 요구되며, 사법시험 및 사법연수원 과정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로 들어오면서 사법부는 '국민을 섬기는 법원, 국민과 함께 하는 법원'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나름대로 여러 분야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정적으로 비추어지는 면도 있다.
그런 와중에 형사사건의 공판중심주의 강화 조치로 인한 검찰과의 대립, 고법 부장판사 구속, 석궁 사건, 현직 부장판사의 대법원장에 대한 문제 제기, 이진강 신임 변호사협회장의 "법조인의 근본은 변호사"라는 점을 강조하는 취임사 등 사법부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이 아무 관련이 없다고 볼 수도 있으나 찬찬히 돌아보고 반성한다면 사법부, 나아가 법조계 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고 본다. 판사, 검사, 변호사의 활동영역과 기본 임무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법률이라는 수단을 통해 구성원들의 문제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3자를 통칭하여 법조계라고 함은 일리가 있다.
결국 법조계는 하나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종전에는 하나의 뿌리라고 하여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으나, 이제는 사법부, 검찰, 변호사 등이 각자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고 평가받을 여지도 있을 만하다. 그런데도 법조계에 대한 불신은 존재하고 있다. 이를 사법부 내지 법조계의 성장통 정도로 볼 수 있을까?
형사피고인의 인권 강화라는 측면이 있으므로 형사사건의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대법원은 종전 관행과의 충돌을 완화하는 진지한 노력, 시간적 완급 조절, 인력의 낭비 문제 등을 신중히 검토하여 완성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고법 부장판사 구속사건을 통하여 법관들의 윤리의식을 고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하고, 석궁 사건을 통하여 혹시 법관들이 '국민을 섬기는 법원, 국민과 함께 하는 법원'의 본지(本旨)인 당사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재판 즉 열린 재판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사법부 구성원의 자율 존중해야
현직 부장판사의 대법원장에 대한 문제제기 사건을 통하여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개혁에 대한 법관들의 불편한 심기가 표출된 것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어찌되었든 현직 부장판사가 직접 대법원장에게 문제제기하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모양새가 좋지는 않았다. 사법부에 대한 충심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니 그 충정을 이해하는 선에서 마무리되면 좋겠다. 이진강 신임 변협회장의 취임사는 혹시 지난해 대법원장이 변호사를 비판하는 듯한 표현을 한 때문은 아닌지?
민주주의 하의 사법부의 역할은 국민을 위하여, 국민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 사법부는 사법부 구성원들인 판사 등의 자율적인 결정에 기초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
대법원이 하급심의 재판에 관여하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것, 선거재판 및 형사재판에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 등은 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사법부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것만이 민주주의 하에서 우리 사법부가 나아갈 길이다.
정영환ㆍ고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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