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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사회로 가는 길-릴레이 인터뷰] 김재철 前 무역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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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사회로 가는 길-릴레이 인터뷰] 김재철 前 무역협회장

입력
2007.03.05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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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 갈등하는 두 힘을 융합, 창조적 에너지로 바꿔야"

*"지도를 돌려보면 한국은 대륙을 발판으로 태평양 향해 우뚝선 나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동원그룹 회장실에 들어서면 커다란 세계지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김재철(72) 회장 자리에서 바로 마주 보이도록 걸린 지도인데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것과는 전혀 다르다. 러시아가 아래에 있고 오스트레일리아가 위쪽에 있다. 지명이나 국가명 등은 모두 제대로 써 있는데 나라의 위치 자체는 거꾸로 그려진 세계지도다.

“기존 지도에서 한반도는 대륙을 머리에 이고 힘겹게 매달려있는 형상입니다만 저렇게 돌려놓으면 상황은 전혀 달라집니다. 더 이상 대륙 끝 작은 반도가 아니라 유라시아 대륙을 발판으로 우뚝 서서 드넓은 태평양을 향해 당당히 솟구쳐 있는 민족번영의 터전이 되지요.” 그는 “지금 우리는 세계사의 전면에 서느냐 아니면 다시 밀려나는 비극을 되풀이 하느냐의 기로에 있다”며 “세계화의 물결이 휩쓰는 오늘날, 우리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좁은 국토, 좁은 생각을 버리고 넓게 세계를 보며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불행히도 우리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 집단이기주의의 만연, 실사구시와 거리가 먼 명분론 등 때문에 구한말의 과오가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며 “우리는 역사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난날을 반성하고 생각과 각오를 정말로 새롭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_우리 경제가 10년 전 외환위기의 교훈을 제대로 새기고 있는지요.

“당시 위기는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비효율 때문에 초래됐습니다. 이후 기업 지배구조가 투명해지고 국제적인 수준의 각종 제도들이 도입됐지요. 위기를 극복한 기업들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게 됐고 금융기관도 많이 정상화됐습니다. 중요한 것은 금모으기 운동 등 국민통합의 계기를 경험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자율보다는 사회복지에 우선하는 정책들로 경제주체들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성장잠재력이 크게 훼손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실업이 늘고 부문별 양극화가 더 커지고 말았습니다. 특히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는 갈등과 충돌은 이미 당시 어려움을 다 잊은 듯 일정 수위를 넘고 있습니다. 서로 상극인 불과 물 사이에 솥을 놓으면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대립과 갈등하는 두 힘을 온 국민이 나서 융합하고 창조적 에너지로 바꿀 때 비로소 외환위기의 교훈을 살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_갈등국면을 몰고 온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민족이 뛰어난 자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계 선두그룹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한가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화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걸출한 인물이 나올 만 하면 어떻게든 깍아 내립니다. 발전한 경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의 의식 때문인데 잘 살게 되었는데도 지독하게 가난했던 지난날의 한을 풀지 못하고 잘 나가는 사람을 헐뜯습니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성공한 나라의 으뜸으로 부러워하는데 우리는 남을 비방하고 반대하는 것을 용기로 착각합니다. 오랫동안 주한 미 상의 회장을 지낸 제프리 존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30여년을 살아 한국사람 못지않게 우리말을 구사하는 분으로 ‘한국인이 두렵다’는 책을 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오늘날 미국의 강력한 국력이나 군사력에 도전할 나라는 당분간 없을 것이다. 만약 있다면 한국인데 한국인이 사이버 세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중국사람을 앞세운 인해전술로 미국을 공격하면 당할 수 없다. 그것이 가장 두렵다’고 했습니다.”

_우리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계십니까.

“이 얘기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습니다만 투자가 살아나지 않고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걱정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건설경기마저 위축될 경우 경기하강 속도는 급속히 빨라집니다. 이미 월간 기준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해 지난 10년간 유지돼 온 흑자기조가 무너질 위기입니다. 많은 제조업체들이 더 이상 국내에서 활동을 못하고 밖으로 나가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우리 경제의 현 주소입니다.”

_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셋만 꼽아주시지요.

“기업은 모닥불처럼 타올라야 합니다. 모닥불은 잘 타게 놔둬야지 자꾸 들쑤시고 건드리면 오히려 죽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크다고 곱지않게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래봐야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중견업체 수준입니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가로막는 많은 걸림돌이 있습니다만 규제와 노동관계법, 정책의 일관성이 문제입니다. 개발연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각종 규제를 다시 살펴 없앨 것은 과감히 없애야 합니다. 수도권 공단에도 대기업이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수도권 규제도 이제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재검토 돼야 합니다. 노동관계법은 국제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수준으로 대폭 손질돼야 합니다. 고용의 유연성문제는 단기적으로는 근로자가 손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회사가 어려울 때 일시적인 해고를 못해 결국 문을 닫게 되면 누가 손해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면 한계기업은 공장문을 닫거나 해외로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예측 가능해야 기업인들이 정부를 믿고 투자를 합니다.”

_거꾸로 보는 지도로 우리나라의 발전 가능성을 설명하시는데 우리나라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2010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2020년 세계 7강 진입 등이 설정 가능한 우리의 목표입니다. 세계 최고수준의 경쟁력을 보유한 정부와 기업, 그리고 경제뿐 아니라 문화와 예술 스포츠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품위를 인정 받을 수 있는 큰 그림이 우리가 추구하는 비전일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금 정말로 처절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세계는 갈수록 승자독식의 시대가 되고 승자위주로 움직입니다. 우리도 승자가 되고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의 스타가 많아야 합니다. 스타 체육인, 스타 문화인, 스타 정치인, 스타CEO(최고경영자)를 길러야 합니다. 기업에도 일등제품이 없으면 곤경에 처하고 나라에 스타가 없으면 발전이 없습니다. 영어를 제2공용어로 정하는 일대 발상의 전환, 정책의 전환도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체계의 일대 개편입니다. 상품은 오래된 것을 고물이라고 거들떠 보지 않으면서도 옛날 지식을 전혀 달라지지 않은 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우리보다 인구가 적고 IQ(지능지수)평균도 낮은 이스라엘이 전체 노벨상의 1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차이는 암기위주 교육방식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교육시스템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선생님 말씀 잘 듣거라’고 말하는데 유태인들은 ‘선생님한테 질문 많이 하라’ 고 하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오늘은 무엇을 질문 했느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_기업이 바라는 다음 대통령 상은 어떻습니까.

“일본에 ‘본업을 버리면 망하고 본업만 하는 회사도 망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늘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다음 지도자야말로 다양한 요구를 수용해 최대공약수를 도출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론 경제를 알고 국제정세를 제대로 파악해 국가경쟁력을 제1의 목표로 삼아야 하고 한정된 인적ㆍ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경영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나라에 큰 지도자가 나오지 못하는 것은 지도자 자질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도자를 기르지 못한 데 있습니다. 지도자라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 틈에서 길러지는 것인데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된 스타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재철 前 무역협회장은…

김재철 전 무역협회장은 원양 참치잡이로 유명한 동원산업의 창업자다.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강진농고를 다녔다. 졸업과 함께 서울농대 특대생(장학생)으로 입학이 예정돼 있었으나 담임선생님이 들려준 바다 개척론 때문에 진로를 바꿨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가 일등국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바다 개척에 나서느냐에 달렸다"는 말이었다. 김 회장은 주저없이 국립 수산대로 방향을 돌려 이후 '제2의 장보고'로 통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바다 맨'이 됐다.

김 회장은 문필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쓴 수필, <남태평양에서> <바다의 보고> <거센 파도를 헤치며> 는 지금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다. 그의 집무실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벽에 걸린 거꾸로 지도말고도 책상에 수북하게 쌓인 책이다. 스스로 많은 책을 읽기도 하지만 강연 요청을 받으면 좋은 책을 다량 구입해 청중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책읽기를 권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9년부터는 한국무역협회장을 맡아 재임 7년 동안 2700억달러이던 우리나라의 무역규모가 5530억달러로 늘어나고 매년 무역 흑자를 달성하는 현장을 성공적으로 지켰다. 지금은 2012년 여수 엑스포 유치위원장을 맡아 대부분의 시간을 엑스포 유치에 쏟고있다. 여수엑스포야 말로 대륙을 딛고 우뚝 선 대한민국이 대양으로 크게 내딛는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1935년 전남 강진생 국립수산대학 어로학과 졸업. 고려대 외국어대 명예경영학박사. 하바드대 AMP과정.

1969년 동원산업 설립

1985년 한국수산회장

1990년 한국원양어업협회장

1993년 대통령자문기관 규제개혁위원

1999년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장

1999년 한국무역협회장

2000년 한미경제협의회장

2001년 국민경제 자문회의 부의장.

2005년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한국언론인협회).

현재 동원그룹 회장. 한국경영과학회 고문. 해상왕 장보고 기념사업회 이사장. 부경대학교 명예총장.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위원장.

●저서

'지도를 거꾸로 보면 한국인의 미래가 보인다'(2000년)

대담=이종재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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