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정치에 대한 논쟁이 한국일보 지면에서 유난히 뜨겁다. 최근 2~3개월 동안 여러 필자들이 중도의 다양한 면을 부각시켜 오고 있다. 중도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해부도처럼 그려지는 것이다.
논의의 핵심은 중도지만, 자연히 보수와 진보의 모습도 드러나게 된다. 올 대선과 관련해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중립과 공정성을 지키려는 신문으로서도 바람직한 본연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 진보학자와 대통령의 갈등
참여정부는 중도인가 아닌가 하는 점부터 밝혀야 할 듯하다. 현 정부는 지금까지 개혁을 내세우기는 했으나 스스로 성격을 진보나 보수, 중도 등으로 규정하는 것을 들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보수 정당ㆍ언론들은 현 정부를 '친북ㆍ좌파 정부'로 몰아왔다. '친북ㆍ좌파'라는 지칭은 현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동반한 '진보'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손호철 교수는 현 정부를 '개혁적 보수세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조희연 교수는 지난달 24일자 조기숙-조희연 교수의 정치대담에서 참여정부를 '중도자유주의'로 규정했다. 시각에 따라 정부는 진보와 중도, 보수로 각각 비치고 있다.
이 중 조 교수의 자리매김은 특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가 '중도'로 본 노무현 정부는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서 가혹한 비판을 받으며 고전해 왔기 때문이다. 정체성 규정은 집권 4년에 대한 평가와도 직접 연관된다. 많은 언론과 정치세력들, 심지어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간부들까지 현 정부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바 있다.
평가자들은 현 정부가 마땅찮을 경우, 정부의 노선이 자신들과 다른 것으로 치부하려 든다. 역으로, 방향이 다를 경우, 당연히 정부에 대한 평가는 인색하게 된다.
이를테면 진보 쪽은 현 정부의 진보적이지 못함을 공격하고, 보수 쪽 역시 보수적이지 않음을 비판하고 있다. 대체로 평가가 과학적ㆍ체계적이기보다 감정이 앞서고 있다. 그 점에서 정부는 보수와 진보, 중도 등 여러 세력으로부터 인심과 신뢰를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마침내 진보에 대해서도 반격에 나섰다. 학자들과 대통령 간에 포용과 관용은 찾기 어렵고 감정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씁쓸한 갈등을 보며 학자의 길과 정치인의 길이 달랐던 브라질의 카르도수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좌파 이론인 '종속이론'의 대가였던 그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면서 추상적 이념보다는 현실의 구체적 악 제거가 더 중요하다는 '생존 가능한 좌파론'을 역설했다. 그는 비판자들에게 "과거 내가 쓴 글은 모두 잊어달라"고 주문했고, 1999년 브라질의 민선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재선에도 성공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강원택 교수는 현 정부가 아마추어리즘, 이념지향, 코드 인사 등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성공한 부분이 있다고 평한다.
대미관계와 정당 민주화, 정치자금, 제왕적 대통령제 해소, 대립적ㆍ갈등적 지역주의 해결, 과거사와 권위주의시대 청산 등은 대체로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성공으로 인한 위기'라는 분석이다.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의 평가도 비슷하다. 현 정부가 사회 구석구석에 있던 권위주의와 부정부패를 몰아낸 것은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며, 정경유착이나 가족ㆍ측근의 비리는 역대 정권 중 가장 깨끗했다고 평했다. 지난달 24일자 한국일보는 현 정부가 경제에서는 기대에 못 미쳤고, 정치에서는 의미 있는 개혁이 적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다.
● 지금은 냉정하게 평가할 때
지금 언론들은 마치 현 정부의 실패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차기 대선 주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서둘러 중계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선정적 보도에 앞서 현 정부의 성공과 실패는 무엇이고, 다음 정부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엄밀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할 때다. 미래를 바라보는 데는 나지막한 지성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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