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와 노동부가 공동 개최한 '고령화시대의 바람직한 연령차별금지제도' 공청회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공청회에서는 나이 때문에 받는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고 40대 이상 중ㆍ고령자들의 고용을 촉진하자는 취지의 '연령차별금지 법제화 방안'이 제시됐다.
공청회에 참석한 노사 관계자들은 연령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는 동의했지만 법 내용과 절차 등 각론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노동부는 이번 공청회를 시작으로 노사 양측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상반기 이내에 법제화할 방침이다.
대기업 계열의 건설사 인사노무 담당 임원이었던 박모(49)씨는 지난해 3월 조기 퇴직했다. 그는 “인사 담당자로서 나이 많은 직원들 정리해고 하는 데 앞장 서 칼을 휘둘렀는데 그 칼에 결국 내가 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능력 위주의 사회라지만 구조조정의 가장 큰 기준은 여전히 나이”라고 털어 놓았다. 회사를 나와서 그는 연령차별의 더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재취업을 노리고 있지만 “나이 많은 죄로” 1년 째 실업자 신세다.
●연령차별의 덫에 빠진 중고령자들
연령차별금지법의 목적은 박씨처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받는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만 모집ㆍ채용ㆍ해고 등 직장에서 벌어지는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구제하는 법ㆍ제도는 미흡하기 짝이 없다. 고령자고용촉진법은 50세 이상에 대한 정당한 사유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법 위반에 따른 구제수단과 절차 등이 전혀 마련되지 않은 선언적 규정에 그치고 있다.
연령차별 실태와 부작용은 심각하다. 모집ㆍ채용에서의 연령제한, 나이가 많은 순으로 정리해고를 하는 관행 탓에 40대 이상의 중ㆍ고령 층은 노동시장에서 일찍 퇴출되고 노동시장 재진입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2002년 한국노동연구원이 기업체 1,433개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사람을 뽑을 때 고령자를 다소 또는 매우 기피한다’고 답한 기업이 무려 58.6%에 달했다. 또 ‘정리해고 기준으로 연령을 고려한다’는 답은 51.1%였다.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차별진정사건 총 2,841건 중 연령차별은 244건이다. 사회적 신분(692건) 성(371건) 장애(341건) 차별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연령차별금지법 적용 대상은 모든 연령층
조용만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실정에 적합한 연령차별금지 법제화 방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연령차별금지의 적용 대상자는 취업 가능한 모든 연령 층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ㆍ고령자 층에 대한 차별금지를 강조하다 보면 젊은이 등 다른 연령 층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 교수는 “모집ㆍ채용에서의 연령차별은 중ㆍ고령 층뿐만 아니라 30대에게도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조 교수는 연령차별을 직접ㆍ간접 차별로 나눴다. 직접차별은 차별의도를 분명히 드러내는 경우를 말한다. 모집 채용 퇴직 등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특정 연령 층에 속했다는 이유 만으로 다른 연령 층에 비해 불이익을 받으면 직접차별에 해당한다.
간접차별은 겉으로는 차별의도가 없어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특정 연령 층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사업주가 채용과정에서 ‘최근 자격증과 5년의 운전 경력’을 요구할 경우, ‘최근 자격증’은 오래 전에 자격증을 딴 자는 배제한다는 것이고 ‘5년의 운전 경력’은 5년 미만 또는 5년 초과 운전 경력자를 제외한다는 점에서 간접차별이다.
조 교수는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 예외 조항으로 ▲직무 성격이나 사업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연령 제한이 불가피한 경우 ▲근속 기간의 차이를 고려해 임금 등에서 합리적인 차등을 둬야 할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는 경우 등을 들었다. 그러나 공청회에 참석한 노동계 측은 “사업의 정상적인 운영, 경영상의 필요성의 개념이 애매해 사업주가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편 병행돼야
조 교수는 연령차별금지법 제정과 함께 근속 기간이 많을수록 높은 임금을 받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숙련도 등에 상관없이 단지 그 직장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 하나로 자신보다 능력 있는 후배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엄연한 연령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효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임금체계를 손대지 않고 연령차별금지법을 효과적으로 정착시키기 어렵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임금체계를 바꾸려면 노조의 양보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차별을 누가 어떻게 입증하느냐도 연령차별금지법의 중요한 요소다. 조 교수는 “차별의 입증책임은 사업주가 부담해야 한다”며 “연령차별을 한 사업주를 형사처벌 하는 대신 사업주가 차별을 시정하도록 유도하는 규정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모집ㆍ채용ㆍ해고ㆍ퇴직에서의 차별금지를 실시한 뒤 임금ㆍ배치ㆍ승진 등의 영역으로 법 적용을 확대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법의 단계적 시행도 제안했다.
김일환 기자 kevin@hk.co.kr
■ 경영계 "인건비·인사적체 부작용도 고려를"
연령차별금지법 제정은 직장에서 연령차별을 없애 고령자의 고용을 촉진한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경영계는 그러나 이 법이 낳을 부작용에 주목한다. 기업은 인건비, 인사적체 등 부담만 커져 오히려 고령자 고용 기회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이 법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선결 과제는 오래 일할수록 많은 돈을 받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의 개편이다. 나이, 근속 기간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과 숙련도에 따라 임금을 차등 지급하는 성과 위주 임금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주제발표를 한 조용만 교수도 이 같이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우리 노동시장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노동부는 기업에 불리한 연령차별금지법을 만들어 강행 규정으로 적용하겠다면서도, 정작 이 법의 전제 조건인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편은 노사가 자율로 추진할 사항이라며 뒷짐이다. 임금체계를 바꾸려면 노조 동의가 필수다. 그러나 노조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을 게 뻔하다.
사측 혼자 임금체계를 개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연령차별금지법만 강제적으로 시행되고, 연공서열형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자의 반발로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기업만 이중 부담을 떠 안게 되는 셈이다. 기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호성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제조사본부장
■ 노동계 "使 인식전환 절실…제도 구속력 필요"
정부가 추진하는 연령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 이 법을 만들어 연령차별을 해소하면 사회 양극화도 줄이고 고령자 노동력 활용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연령차별금지법의 정착을 위해서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도 함께 개편돼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노동계도 연공서열형 임금체계를 그대로 갖고 가자는 건 아니다. 임금체계는 직무 숙련도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임금체계 변경은 단위 기업 노조가 알아서 할 일이지, 한국노총 같은 상급단체가 개입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노조가 임금체계를 바꾸지 않고 사측을 윽박지르거나 생떼를 쓸 것이라고 예단하면 안 된다.
기업은 무조건 이 법을 피하려고만 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업은 이 법을 계기로 차별 개선과 함께 노동자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직무 역량을 계발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연령차별금지법의 차별 예외 조항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조용만 교수의 제안처럼 ‘사업의 정상적인 운영’ ‘경영상의 필요성’에 의한 차별은 연령차별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두 항목 모두 개념이 불명확해 사업주의 횡포에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사업주가 아예 연령차별을 못하도록 좀 더 구속력 있는 차별 구제와 시정 제도가 법에 포함돼야 한다.
한국노총 김종각 정책본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