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국립공원과 인접한 충북 괴산군 청천면 도원리 피거산(해발 375m) 기슭에는 돌탑들이 즐비하다. 켜켜이 쌓아 올린 높이 3~7m의 제법 웅장한 것들이다. 모양도 성황당, 첨성대, 삼층탑, 남근모양 등으로 다양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언제부터인가 주민들은 이곳을 ‘도원성 탑골공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돌탑들을 만든 사람은 금속공예가인 홍익대 조치원캠퍼스 조형학부 고승관(65) 교수다. 그는 1987년 도원리에 정착한 이후 줄곧 돌탑을 쌓고 있다. 올해로 꼭 20년이 됐다. 산기슭을 가득 메운 돌탑은 280기나 된다. 돌탑으로 유명한 전북 진안군 마이산(약 120기) 보다 훨씬 많다. 주변에 널린 자연석을 이용해 탑을 쌓았는데, 인근 산에서 실어 나른 돌이 경운기로 3,000대 분을 넘는다고 한다.
서울 출신인 그가 산골에서 탑을 쌓게 된 이유를 묻자 도원리의 풍경에 매료돼 정착했다고 한다.
작업실을 대자연으로 옮긴 그는 강의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산속에서 지낸다. 하루 3,4명의 인부를 쓰느라 월급봉투는 늘 받자마자 텅텅 빈다. 그것도 모자라면 자신의 공예작품도 팔아 치운다. 그의 탑들은 들쭉날쭉한 모양과 크기의 돌을 쓰지만 무척 견고하다. 땅속 1m를 파낸 뒤 쌓아 올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 동안 여러 차례 태풍과 장마에 시달렸어도 단 하나도 무너지지 않았다.
돌탑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산은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구경꾼이 늘자 그는 주민들과 합심해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돌탑 주변에서 ‘도원성 탑돌이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는 점점 커져서 전국 예술인들이 참여해 한해 소원을 비는 문화 행사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대보름에도 ‘남북통일 기원제’란 제목으로 풍성한 탑돌이 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7년, 대학을 10년 만에 졸업한 이력을 갖고 있는 그는 10년 전부터 여름철이면 자신의 작업장인 도원성 미술관에서 어린이를 위한 무료 미술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요즘 돌탑을 쌓는 동시에 산자락에 높이 4.5m, 길이 130m의 대형 옹벽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는 대형 벽화를 그릴 생각이다. 또 산을 휘감고 흐르는 박대천 변에는 조각공원을 세울 참이다.
“우리 동네가 도원리이고 인접한 마을이 무릉리이니, 결국 문화예술의 ‘무릉도원’이 생기는 셈이지요.”
올 연말 정년퇴임하는 고 교수는 “돌 탑을 왜 쌓느냐”는 질문에 “왜 사는지 알고싶다”고 알쏭달쏭한 대답을 한 뒤 웃었다.
괴산=글ㆍ사진 한덕동기자 dd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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