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70ㆍ80년대 빈둥빈둥 놀면서 혜택을 입은 사람들’ 발언을 계기로 잠복했던 한나라당 대선주자간 정체성 논란이 다시 표면화하고 있다.
이 전 시장의 발언은 당내 정체성 공방의 단골 메뉴였던 ‘보수 대 중도개혁’의 대립구도에 ‘산업화 세력 대 민주화 세력’이라는 키워드를 더했다. 특히 경선 룰의 대폭 수정을 요구해 온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논쟁의 중심에 뛰어들면서 대립이 더 첨예해졌다.
논란이 커지자 이 전 시장은 28일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 같다”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는 “내가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민주화 세력이 아니냐”고도 했다. 이 전 시장측은 “정체성 논란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정두언의원) 이라고 주장했다. 조해진 공보특보는 “이 전 시장은 6ㆍ3 동지회장을 지낸 민주화 세력이자 경제개발을 이끈 산업화세력”이라면서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부인했다.
손 전 지사는 이날 한국노총 대의원대회에 참석, “우리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세력은 70~80년대에 빈둥대고 놀지 않았다. 사회를 위해서 열심히 투쟁했다”며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을 나누는 구시대적이고 분열적인 사고로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그는 “70년대 노동자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선에서 피를 흘리며 투쟁했던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동지들이 생각난다”며 “똥바가지를 뒤집어쓰면서도 노동자 권익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고 회고했다. 손 전 지사는 또 “한나라당 주류 세력이 냉전세력으로 남아있는 한 현재의 대세론은 거품에 불과한 것”이라며 당내 보수세력과 이 전 시장을 동시에 겨냥했다.
박 전 대표는 전날 정책투어를 시작한 만큼 이 전 시장을 직접 겨냥하는 발언은 삼갔지만 측근들은 “이 전 시장의 역사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군불을 지폈다.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는 태생적으로는 산업화 세력과 가깝지만 민주화 세력의 공을 늘 이야기 해왔다”며 “산업화 세력으로 분류되더라도 민주화세력을 어떻게 보고 평가할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측은 이 전 시장의 정체성에 대해 “자기 색깔 없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업혀 가고 있다”(최경환 의원), “예민한 문제는 피해버려 색깔이 뭔지 모르겠다”(유승민 의원)고 공격하고 있다.
한편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반독재 민주화, 노동 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모독적 발언”이라며 이 전 시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태희 기자 goodnew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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