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더 이상 저임금으로 경쟁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근로자들에게 저임금을 강요하기 보다 숙련, 의욕, 창조적 자세를 주문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선진국도 임금이 싸지 않습니다. 정치가가 경제 전면에 나서는 것도 후진국에나 있는 일입니다. 정치가는 기업가나 각 생산요소의 뒤로 물러나야 합니다. 한국이 이 같은 선진국형 전략을 추구하지 않고 후진국형 전략을 취한다면 국가경쟁력은 더욱 떨어질 수 있습니다.”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27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한국선진화포럼 월례 토론회에서 ‘한국의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 아젠다’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이 같이 말했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은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23~38위 정도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경쟁력연감에서 세계 38위, 산업정책연구원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23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24위에 그쳤다.
반면 1980년대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의 네마리 용으로 불렸던 국가들은 1~3위를 오가며 한국을 따돌리고 있다. 싱가포르는 WEF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1996~1999년 연속 1위를 했고, 홍콩은 1996~98년 연속 2위, 대만은 2002년 3위를 했다. 중국은 지난해 19위였으며, 말레이시아는 2004년 5위를 했다. 한국은 말레이시아에게도 추월을 당한 셈이다.
조 교수는 발표를 시작하며 “국가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한국은 항상 주눅들어 있고 점점 위축돼 가는 것 같다”고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위의 세 국가는 나라가 작기 때문에 쉽게 올라가는데 비해 한국은 규모가 있기 때문에 저력을 갖춰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한번 1,2,3등 해보자, 아니면 5년 안에 최소 세계 5위 안에 들어가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것 저것 모든 것을 다하려는 후진국형으로 접근하면 일본이라고 해도 세계 50위로 추락할 수 있다”며 “집중과 차별화라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가경쟁력을 5위로 끌어들이는 기초가 될 8대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는 기술과 디자인에 대한 투자를 국민총생산(GNP) 대비 3% 수준으로 올릴 것을 주문했다. 이어 ▦노사관계 향상과 경쟁체제 확립을 위한 윤리경영 및 시장개방 ▦산학협동 강화와 지역 통합을 통한 산업 클러스터 구축 ▦브랜드 제품과 친환경 제품 개발을 통한 시장의 질적 역량 강화 ▦ 평생학습체제 확립을 통한 노동 숙련도 향상 등을 주문했다.
조 교수는 특히 정치가와 행정관료에 대해 “모든 규제를 없애는 게 선진국은 아니다”며 “선진국형 제도는 강화하되 지원에 따른 반대급부적 규제에는 형평을 추구하고, 인허가 관련 규제와 간섭은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기업가에게는 직접적 창업 지원보다 창조정신 고양을 위한 시장 메커니즘 강화 ▦고등교육을 국제경쟁 체제로 개선하고 고급인력시장을 개방할 것 등을 당부했다. 조 교수는 이 같은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경쟁력 강화위원회’를 둘 것을 제안했다.
그는 특히 노동ㆍ부동산ㆍ의료ㆍ교육 문제를 ‘4대 문제’로 꼽고 각각의 해결 방향을 제시했다. 조 교수는 “우선 노동문제의 경우, 노조가 지나치게 투쟁적이라 해도 노조 자체에 대해서만 비판해서는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며 “노동문제는 경영자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 성격이기 때문에 경영자가 투명하고 윤리적인 경영을 할 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해 그는 “고급가격에 대한 수요를 투기적 수요로 봐서는 안 된다”며 “부동산 문제에서 정부가 빠져야 수요와 공급 사이에 존재하는 왜곡을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와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를 위한 것과 소수를 위한 의료ㆍ교육 서비스의 균형점에 대해 언급했다. 조 교수는 “수준 높은 의료와 교육을 위해 개방 및 다양성을 허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 모두를 위한 서비스도 한단계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화포럼
정책 대안 제시와 차세대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경제 원로들이 주축이 돼 2005년 9월 출범했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이사장이며,진념 전 경제부총리, 이헌재 전 국무총리,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등과 기업인들이 참여하고 있다.
매월 전문가를 초청해 토론회를 개최한다. 최근 남덕우 전 총리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제자문단 좌장직을 맡으면서 포럼의 중립성을 위해 대외활동을 하는 회장직을 사임, 현재는 진념 전 부총리가 회장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 참석자들 열띤 토론/ "경제 효율성만 따를땐 사회·문화 문제 생겨"
조동성 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진행된 토론에서는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단순히 경제 전체적인 효율성만 추구할 경우 사회ㆍ문화적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반론이 나왔다. 이미 10여년 전에 경쟁력 제고 방안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동안 속시원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던 것은 그러한 사회문화적 복잡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우천식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겸 경제부총리 자문관은 “국가경쟁력 순위에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만 문제 진단에는 도움이 된다”고 전제한 뒤 “정책을 통해 봤을 때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은 10여년 전부터 모두가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제는 그것이 왜 안 되고 있는 지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한 개방, 서비스 구조조정, 노동시장의 유연화, 경쟁제한적인 규제 혁파 등이 경제 전체적인 효율성 제고의 답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실천이 어려운 이유는 이로 인한 분배 문제나 사회문제가 대두돼 오히려 성장잠재력을 저해하는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사, 의료, 부동산, 교육 문제 등에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이는 경제의 문제일뿐 아니라 사회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며 “전통적인 경제적 접근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경제에 좋은 것만 추구하다가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 사회ㆍ문화적인 포괄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 연구위원은 “아일랜드, 싱가포르, 미국 등의 ‘국가경쟁력위원회’제도는 정치문화적 환경이 달라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접목시키기는 어렵다”며 조 교수가 제안한 경쟁력강화위 설립 제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고급인재 양성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해법을 제시했다. 우 연구위원은 “고급인력은 있지만 활용이 안 되는 것이 문제”라며 “해외의 우수한 한인 두뇌들이 낭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는 차세대 성장동력에 관한 학과도 없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우수인력에 대한 흡인력이 없다”며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해외의 660만 동포에 있을 지도 모르는 만큼, 이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와 인력 육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는 등 이미 있는 고급인력에 대한 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무는 각 기관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 대한 맹신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이 상무는 “우리나라는 대만보다 국가경쟁력 순위가 높아 본 적이 없다”며 “하지만 대만은 한국을 부러워하고 경제 성과도 한국이 대만을 앞선다”고 평가했다.
일본이 한때 2위에서 24위로 떨어진 것에 대해서도 “두가지 순위 중 한가지는 잘못된 것 아니겠느냐”며 “설문조사가 경쟁력 지표에 반영되는 만큼, 그때 그때 언론 등에 보도되는 사건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고 한계를 설명했다.
그는 정치인이나 행정관료의 시장 간섭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정치가들이 시장에서 후퇴하고 싶어도 후퇴하면 큰일 날 것처럼 여기는 여론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이 상무는 “정치가나 행정 관료의 시장 개입을 줄일 수 있는 힘은 여론의 요구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 여론을 움직이기 위해 지식인들이 적극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 상무는 경제인들의 현실적인 어려움도 이야기 했다. 그는 “지금까지 모방경제는 쉬웠지만 선도경제는 어렵다”며 “첨단화, 고부가가치, 차별화 등 여기저기서 주문을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그게 참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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