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 독립만세운동 당시 일제는 제암리 학살 만행의 진상을 은폐했다. 그 사실을 기록한 조선군 사령관의 일기를 80여년 만에 후손이 세상에 공개한 것은 뜻 깊다.
일제가 저지른 숱한 죄악을 부인, 왜곡하는 데 익숙한 일본사회가 스스로 그릇된 과거를 청산하는 올바른 길을 제시한 것으로 볼 만하다. 보수 우경화가 두드러지는 일본 지도층부터 이를 본보기로 삼아 불행한 역사를 딛고 한ㆍ일 관계의 밝은 미래를 여는 데 앞장서기 바란다.
3ㆍ1 운동 전후로 2년 동안 조선군 사령군을 지낸 우쓰노미야 타로(宇都宮太郞)는 1919년 4월 15일 일본군이 수원 제암리 교회에 주민 30여명을 가두고 학살한 뒤 불을 지르는 만행을 저지른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있다.
그는 '사실을 사실대로 하면' 일제의 입장에 심대한 불이익이 되기에 학살ㆍ방화는 인정하지 않고, 주민들이 저항해 부득불 살육한 것으로 사건을 조작했다고 기록했다.
사건 직후 선교사 스코필드가 현장사진을 찍어 국외로 보내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린 것에 비춰보면, 국제적 비난여론이 일 것을 염두에 두고 '불가피한 살육'을 인정하는 선에서 수습하려 한 것이다.
정보 전문가인 우쓰노미야의 일기는 독립운동 진압실태와 함께 민족지도자 매수ㆍ회유와 임시정부 내분공작도 소상하게 기록, 사료가치가 크다고 한다.
15년 치 일기 등 1급 사료 수천 점을 아들과 손자가 이어 보존하다 공개, 곧 책으로 묶어 낼 예정이다. 참의원의원을 지낸 아들 우쓰노미야 도쿠마(宇都宮德馬)는 대표적 친북 좌파 정치인으로 생전에 우리 국익에 반하는 언행을 거듭, 부자 2대에 걸쳐 악연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제 3대째에 이르러 자신의 할아버지와 일제의 죄상을 '사실대로' 증언하는 기록을 공개한 것은 선대에 지은 악업을 대신 씻는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3ㆍ1 절 88주년에 즈음하여 겸허한 자세로 역사적 진실과 마주하려는 일본사회의 양심과 용기를 보게 된 것은 반갑고 다행한 일이다. 이런 바람직한 변화가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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