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 5주년을 며칠 앞둔 지난해 9월 초, 파키스탄 정부는 북 와지리스탄의 무장세력과 협정을 맺었다. 아프가니스탄 접경지역에 위치한 북 와지리스탄은 탈레반 주류 종족인 파슈툰족의 거주지역이다.
이 협정을 통해 파키스탄 정부는 이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을 풀어주며 압수한 무기를 되돌려 주는 등의 양보를 하는 대신, 무장세력들에게 아프간으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예전부터 ‘통제 안 되는’ 부족이었던 파슈툰족의 무장세력과 5년 간 전쟁을 벌이면서 700여명의 병사를 잃은 뒤 지쳐 버린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과 파키스탄 군부가 정책을 ‘채찍’에서 ‘당근’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당근 정책은 채찍 만큼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이 지역이 파슈툰족의 ‘무법천지’이자 친 탈레반 무장세력의 온상처럼 돼 버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수개월이 지난 지금, 아프간에서는 탈레반의 자살폭탄공격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부터 공세를 강화한 탈레반 무장세력의 자살폭탄공격 등으로 아프간에서 폭력사태로 숨진 희생자는 전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한 4,4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지역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는 골칫거리는 탈레반만이 아니다. 최근 뉴욕타임스와 AFP 등은 파키스탄의 아프간 접경 지역에 테러리스트 조직인 알 카에다의 본부와 훈련캠프 등이 다시 세워지고 있다며 이 지역이 ‘무장세력의 허브’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방문에 앞서 무샤라프 대통령과 회담한 것도 이 같은 서방의 우려를 전달하고 파키스탄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파키스탄 외무부는 “동맹국끼리의 일상적 방문”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진기자들을 위해 무샤라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을 때조차 체니 부통령은 미소를 띄지 않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체니 부통령은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미국의 원조 중단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파키스탄이 탈레반과 알 카에다 등 아프간과의 국경 지역에 있는 무장세력과 충분히 싸우고 있지 않으며, 탈레반의 부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미 하원은 지난달 파키스탄 원조를 끊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키고 상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미 행정부는 2002~2006년 군사원조를 포함해 35억달러를 파키스탄에 지원했고, 올해 7억8,500만달러 지원을 계획했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통성 없는 정권으로 야당의 공격을 받고 있는 무샤라프 대통령은 정권 유지를 위해 친미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은 무샤라프 대통령의 지키지 않는 약속들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어 양국의 동맹에 균열이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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