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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노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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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노동자 시인

입력
2007.03.05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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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시 가운데 어떤 것이 가장 좋은 시였을까. 도서출판 '작가'가 시인과 문학평론가 등 문인 150명의 추천을 받은 결과 김신용의 <도장골 시편> 이 최고 점수를 받았다. <넝쿨의 힘> 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시는, 감나무에 열린 커다란 호박을 그리고 있다. '…무거운 짐 지고 비계(飛階)를 오르느라 힘겨웠겠다.

저 넝쿨/ 늦가을 서리가 내렸는데도 공중에 커다랗게 떠 있는 것을 보면/ 한여름 내내 모래자갈 져 날라 골조공사를 한 것 같다. 호박의 넝쿨/ 땅바닥을 기면 편안히 열매 맺을 수도 있을 텐데/…'(부분)

▦ 김신용은 호박 넝쿨의 수고로움과 허공으로 뻗은 보이지 않는 길을 감지한다. 길이 있었기에 그리로 뻗어가, 저렇게 허공 중에 열매를 매달아놓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소박한 언어들은 호박 넝쿨과 건축공사장의 힘겨운 노동을 일치시킨다. 그것은 구체적 체험이 없으면 얻기 힘든 발상이다.

그는 소년원 출신에 부랑생활, 지게꾼, 막노동 등 밑바닥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시를 의식화에 끌어들였던 박노해 박영근(작고)과는 다른 문학적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의 시는 사적이고 존재론적 성찰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 30년 간 용접공 일을 해온 최종천은 지난달 시집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를 펴냈다. 시 <돈!> 은 그의 노동관을 보여준다. '우리 노동자들끼리 서로 만나 인사할 때/ 돈 좀 벌었느냐고 묻지 말아야겠다/ 우리는 노동계급이다, 노동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부분) 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가의 60%는 창작활동 소득이 월 100만원 이하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창작 본업으로는 살기가 어려워 도배나 집수리 등 육체노동에 나서고 있다. 많은 문인 겸 노동자 중에서도 최하층에 해당하는 김신용의 시가 지난해 최고의 자리를 기록했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맞으며 '문화의 세기'로 규정했다. 하지만 '문화의 세기'가 오거나 말거나 많은 예술인들은 여전히 궁핍하다. 또 다른 조사에 따르면, 문인 중 65%가 궁핍 속에서도 문학적 삶에 만족하고 있다. 그것은 문학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열망 때문일 것이다.

원래 노동은 신성한 것이다. 이것은 고행을 선택했던 중세 수도사들의 신념이기도 했다. 우리의 '문화의 세기'가 공허한 수사가 되지 않으려면, 마치 옛 수도사처럼 정신적 차원에서 자기 길을 가는 예술가들이 생활에서도 소외되지 않게 해야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실장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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