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올해로 일흔이다. 주위에서 여러 사람이 '한 번 해봐라'고 권하는 데 나는 때려 죽여도 전경련 회장을 할 생각이 없다. 이제 칠십 넘은 사람은 회장 자리를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대림산업 이준용 회장)
"몇 년 전 일본 게이단련(經團聯ㆍ일본의 전경련과 같은 단체) 회장단이 왔는데, 저녁을 대접할 회장단이 없을 정도였다. 내가 삼성ㆍLG 회장을 찾아가 '어떻게든 전경련을 지켜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총수들이 전경련에 무관심하다. 나이 많은 강신호 회장을 비난하지만, 아무도 맡으려고 하지 않는 상황에서 오히려 너무 잘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27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정기총회는 추락하는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자리였다. 거친 발언이 난무했고, 4대 그룹의 외면 속에 회장 선임을 둘러싼 중견그룹 총수간 갈등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날 회의의 하이라이트는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의 발언이었다. 지난 2일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전경련 부회장직 사퇴라는 초강수로 강신호 회장의 연임을 저지한 것처럼, 이 회장은 26일 오후까지만 해도 차기 전경련 회장으로 굳어졌던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토 의견을 냈다.
감기 때문에 목소리가 잠겼다면서도 이 회장은 5분 이상의 신상 발언을 통해, 조 회장이 차기 회장에 선출되는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그는 "50대 후반의 젊은 총수를 차기 회장으로 추천했으나, 강신호 회장이 '그 사람은 너무 젊다'고 거부했다"면서 전경련 지도부의 전면적 세대교체를 주장했다.
이날 회의를 참관한 전경련의 한 간부는 "전경련 사무국에 20년 넘게 근무했는데, 덕담이 오가는 정기총회에서 오늘처럼 거친 발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올해 88세인 이수그룹 김 명예회장은 세대교체를 주장하는 이 회장의 '폭탄 발언'을 일축했다. 김 명예회장은 "전경련의 위상이 더 이상 추락하는 걸 막으려면 일부 이견이 있어도 오늘 회장을 뽑아야 한다"며 차기 회장 선출을 위한 전형위원회 개최를 강행했다.
김 명예회장은 조석래 회장에게 당장 회장을 맡아야 한다고 권했으나, 조 회장이 강력하게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경련 지도부는 "이준용 회장의 발언은 개인적인 차원에 불과하며 조 회장은 여전히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라는 입장이다.
한편 일부 중견그룹 총수들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의 대주주격인 4대그룹과 재계 순위 30위 이내 중견그룹 대부분은 이날 총회에 차장급 직원을 참석시키는 등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다.
주요 그룹 총수로 구성된 21명의 전경련 부회장단 가운데 정기총회에 참석한 사람은 조석래, 이준용, 박영주(이건산업), 류진(풍산)회장 등 4명에 불과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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