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미중인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미측과 협의를 마친 뒤 28일 한미 정상회담 추진 사실을 공개한 것은 최근 한미관계가 호전되고 있는 양상에 한국측이 상당히 고무돼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백 실장을 수행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북핵 문제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한미관계도 잘 풀려가고 있다”며 한껏 자신감을 보였다.
이 관계자는 또 짧은 일정으로 방미한 백 실장이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매코넬 국가정보국장을 하루 동안에 모두 만났다면서 “미측의 이 같은 배려는 한미관계가 복원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내내 미국의 대북 강경책에 대한 거부감, 자주외교의 지나친 강조, 비외교적 언행 등으로 한미관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아 온 점을 감안하면 이처럼 한미관계 복원을 자랑했다는 것은 큰 변화에 해당한다.
청와대측의 한미 정상회담 추진은 북핵 문제 외에 전시작전통제권 이양 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데다 여기에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까지 성공적으로 타결되면 한미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양 정상이 만나 한미 관계가 질적 도약을 이뤄냈음을 확인하고 그 대외적 홍보효과를 최대화하겠다는 뜻이다.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여기에는 임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노 대통령이 이뤄낸 외교적 업적의 큰 줄기를 한미관계에서 찾으려는 속내가 엿보인다.
이는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노 대통령의 업적 관리에 들어갔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내치 보다는 외교에서 업적을 찾으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측의 이 같은 움직임은 한미관계를 파탄시킨 장본인이라는 일부의 평가를 일거에 뒤집고 한미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이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한미관계를 미래지향적인 정상궤도에 올려 놓겠다는 계획은 다른 의도 여하를 떠나 그 자체가 긍정적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문제가 따른다.
북핵 문제가 겨우 가닥을 잡았다고는 하지만 한국측의 선의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는 많은 고비들이 남아 있다. 또 청와대측이 업적 관리에 신경을 쓴 나머지 한미 FTA 협상에서 타결에만 집착한다면 한미 정상회담을 이뤄진다 해도 그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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