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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장석원이 평론가 조강석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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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우정편지] 시인 장석원이 평론가 조강석에게

입력
2007.03.0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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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29일, 너에게 전화를 받았지. 그때 3층 창가에서 내가 본 것은 석양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인가 흘러갔다. 누군가 떠나갔다.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둠 앞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네가 그의 죽음을 말한 후 너와 나는 한동안 침묵했어. 그때 우리는 그곳에서 무엇을 했던 것일까. 우리에게는 남겨놓은 사진 한 장 없다. 강석아,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사랑이었다면 우리는 절망 밖에서 영원히 아름다울 것이다.

2004년 5월 말, ‘한국 문학 연구를 위한 국제 교환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열 다섯 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보스턴 공항의 새벽 불빛. 그곳에서 나와 너는 서로를 왕따라고 부르며 다른 일행들 몰래 시내를 돌아다니며 술을 마셨지. 한국 촌사람처럼 ‘샤이’(shy)했던 친구. 그가 떠오른다.

나는 지금 올맨 브러더즈 밴드의 ‘엘리자베스 리드를 기억한다’를 듣고 있어. 한 사람을 추모하는 기타 연주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을 서울에서 목격한 후 지키던 종교를 버리고 한국 문학을 선택했던 사람. 박노해의 시가 지닌 붉은 눈빛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준 사람.

신촌에서 막걸리를, 안암동에서는 맥주를 마시며 너무나 진지하게 한국어 욕을 알려달라고 했던 사람. 교수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주홍빛 수염을 기르고, 뚫은 귀를 귀걸이로 장식하고, 말보로 라이트를 피우던 사람. 네가 전해준 그의 투병 소식. 마지막 생의 기록을 남겨놓은 그의 블로그에는 문학과 암이 평화스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한 사람의 부스러진 생을 기타가 따라간다. 그가 바라본 1987년의 5월을 생각한다. 실내 포장마차 백화만발(百花滿發). 구멍 뚫린 썬팅에 기웃대던 노을, 하늘 정원으로 답청 나갔다 귓속까지 밀물져온 노을의 숨소리. 보도블록 틈새로 실핏줄처럼 따라온 오월. 가지에 매달려 꽃망울 맺던 햇살의 뒤척임. 손에 든 잔 너머 노을 한 점 타오른다. 버들방천 환하게 물들이는 불빛 저녁의 강물 안고 흔들린다. 피기도 전에 낙화한 그.

우리는 만나서 술을 마셨다. 막상 그에 대한 말은 나누지 못했던 것 같구나. 너는 좋은 데 갔을 것이라고 했다. 네모난 안경 너머 반짝이던 눈빛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의 몸을 갉아먹었을까.

문득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알고 있었던 보르헤스가 떠오른다. 그가 시력 대신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흰 지팡이를 집고 하버드 교정을 천천히 거닐던 보르헤스와 그가 겹쳐진다. 우리 기억 속의 동상이 되어 그는 그곳에 거주하고 있겠지. 이제 연주가 끝났다. 내가 들은 음악은 ‘스캇 스와너를 기억한다’였다.

석원 2007년 2월

■ 김다은의 우체통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 친구의 부음 접해

2004년 서울대와 하버드대가 공동 주최한 '한국문학을 위한 국제교환프로그램'에서 장석원, 조강석, 스캇 스와너가 처음 만났다. 김수영 박노해 등 한국시를 번역해온 시애틀대 교수 스캇 스와너가 가장 배우고 싶어했던 것은 한국어 욕. 웬만한 욕은 있는 대로 입에 올리며 술을 같이 마신 탓에 그들은 곧 친구가 되었다.

작년 12월 스캇 스와너가 암으로 세상을 떴다. 한국시를 지극히 사랑했던 외국인 친구! 석원은 '엘리자베스 리드를 기억한다'라는 음악을 '스캇 스와너를 기억한다'로 바꾸어 들으면서, 강석은 죽은 친구의 무덤을 보고 싶어하며 가슴 시린 겨울을 보냈다.

소설가·추계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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