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 문제로 서방과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이란이 최근 외교적 보폭을 넓히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적 압박으로부터의 탈피를 모색하고 있다.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 등 이란 지도부는 중동은 물론 아프리카와 남미까지 방문하는 등 전례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이들 국가는 한결같이 반미 성향과 이슬람권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월 15일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데 이어 지난달 28일엔 수단을 방문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고향이기도 한 수단은 아프리카 최대 무슬림 국가로 다르푸르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는 점에서 이란과 이해관계가 통한다.
친미 국가로 앙숙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개선도 시도하고 있다. 사우디 왕가의 실세인 반다르 빈 술탄왕자가 1월에 테헤란을 방문, 시아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가 주도하는 레바논 총파업을 진정시키기 위한 이란의 협조를 요청하자 이란은 알리 라리자니 핵협상 대표를 리야드로 보내 화답했다.
이란은 3, 4월 각각 이라크와 터키에서 열릴 예정인 실무 및 장관급의 이라크 안정화 국제회의에도 참석할 계획이다. 이 회의에는 미국도 참여할 예정이어서 미ㆍ이란 간 대화창구가 열릴 지 주목된다. 이란은 또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국가들과 정치ㆍ경제적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란 지도부의 바빠진 발걸음은 유엔의 우라늄 농축중단 시한을 넘긴 뒤 더욱 목을 죄고 있는 미국과 유럽 국가들에 대항하는 세력을 구축, 고립주의를 깨뜨리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친 이란 입장인 러시아와 중국에다 이들 국가까지 가세할 경우 미국의 군사적 위협은 물론 경제적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국내에서 커지고 있는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강경입장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겠다는 것도 활발한 외교행보에 감춰진 속내이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집권 이후 심화한 경제난과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미국의 공격 가능성 등으로 개혁과 보수 양 진영으로부터 모두 비난 받는 샌드위치 신세다. 때문에 외교적 협력 강화는 이들의 비판을 불식시킬 수 있는 탈출구로 여겨진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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